[과점기업-6] 우리가 매일 먹는 담합 (CJ제일제당, 대한제분, 삼양사, 대상)

며칠 전 저녁, 부침개를 부치려고 찬장에서 밀가루 봉지를 꺼냈다. 손바닥에 얹으니 서늘하고 묵직했다. 봉지에는 오래 봐 온 상표가 큼직하게 찍혀 있었는데, 문득 내가 그 회사에 대해 아는 것이 상표 말고는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몇 십년을 먹어 온 가루인데도 그렇다. 앞 이야기의 시멘트는, 값을 부를 힘이 있고도 살 사람이 없어 무너진 과점이었다. 이번엔 정반대다. 값을 부를 힘을 가진 데다, 살 사람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 시장. 그래서 담합이 오래, 그리고 아주 잘 통한 회사들이다. 그날 내 손바닥 위에 있던, 우리 식탁의 맨 밑에 깔린 가루들이다.

밥상 밑에 깔린 가루는 크게 셋이다. 빵과 면과 과자가 되는 밀가루, 거의 모든 가공식품의 단맛을 만드는 전분과 전분당, 그리고 설탕. 물엿, 과당 같은 이름으로 음료수와 과자와 소스 속에 조용히 들어가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 가루를 마트에서 빈번하게 구매하는 일은 드물지만, 그것의 가공품은 하루에 몇 번씩 자기도 모르게 먹는다. 그리고 2026년, 이 가루들이 한꺼번에 뉴스에 올랐다. 값을 짜고 올린 혐의로, 그것도 줄줄이 사상 최대 과징금을 갈아치우면서.

가루 삼형제

셋 다 소수의 회사가 나눠 쥔 과점이다. 밀가루는 7개 회사가 기업간 거래 시장의 88%를, 전분은 단 4개 회사가 96%를 쥔다(전분당도 86%다). 소비자는 몇몇 회사들의 이름조차 모를 수 있지만, 빵집도 과자 공장도 음료 회사도 결국 이들에게서 가루를 사 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밥상의 맨 밑바닥 벽이다.

흥미로운 건 이 셋에 겹치는 얼굴들이 있다는 점이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는 설탕에도, 밀가루에도, 전분당에도 이름을 올린다. 같은 회사들이 가루마다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서로의 값을 맞추기로 마음먹는 데는, 그리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가루를 쥔 얼굴들

이 자리에 앉은 얼굴들 가운데 둘은, 우리가 이미 안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 설탕 편에서 만났던 바로 그 회사들이다. 삼성에서 갈라져 나와 설탕이 곁가지가 된 27조 원의 식품·바이오 그룹과, 장부의 절반이 화학인 백 년 된 회사. 두 얼굴은 앞에서 자세히 봤으니 여기서는 줄인다. 다만 기억해 둘 것은, 설탕 값을 맞추던 그 둘이 밀가루에도 전분당에도 그대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설탕 때는 이 자리에 대한제당이 있었다. 밀가루와 전분당에서는 그 자리에 다른 이름들이 들어선다. 대한제분은 1952년부터 밀가루만 빻아 온 곰표의 회사이고, 대상은 미원과 청정원으로 익숙한, 전분당과 조미료의 오래된 강자다. 사조는 동아원과 사조CPK라는 이름으로 밀가루와 전분당 양쪽에 걸쳐 앉아 있다.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다. 설탕의 대한제당과 밀가루의 대한제분은, 이름이 한 글자 차이라 한집안처럼 들리지만 아무 관계가 없다. 대한제당은 대한국전력공사선을 세운 설경동 일가가 1956년에 시작한 설탕·사료 회사이고, 대한제분은 이종각 일가가 1952년부터 곰표로 키운 밀가루 회사다. 창업주도, 그룹도, 지분도 다른, 이름만 닮은 남남이다.

얼굴 몇은 바뀌었지만 판의 생김새는 설탕에서 본 것과 똑같다. 나이 지긋한 회사 몇이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얼굴을 수십 년째 알아 온 구도다.

줄줄이 갈아치운 기록

2026년 상반기,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세 가루의 담합을 차례로 적발했다. 그때마다 ‘역대 최대 과징금’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다음 발표가 그 기록을 다시 깼다.

품목과징금담합 내용
설탕 (3사)4,083억 (최종 3,959억)2026.2 · 8차례 · 불복 소송 중
밀가루 (7사, 88%)6,710억2026.5 · 6년간 24차례, 값 +38~74%
전분당 (4사, 전분 96%)7,476억2026.7 · 7년간 13차례, 값 최대 +73%

※ 설탕은 2026년 2월 12일 공정위 발표(잠정 4,083억 원), 3월 5일 전원회의 의결로 확정됐다. 사건명은 「3개 설탕 제조판매 사업자들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건」이고, 의결서는 5월 6일 공개됐다. 담합 매출액은 3조 1,951억 원으로 산정됐으며, 조사·심의 협조를 이유로 1차 조정 산정기준의 20%가 감경돼 4,949억 원에서 3,959억 원이 됐다. 회사별로는 CJ제일제당 1,383억 6,200만 원, 삼양사 1,302억 5,100만 원, 대한제당 1,273억 7,800만 원이다. 밀가루는 5월 20일, 전분당은 7월 7일 부과됐다. 본문의 「올릴 땐 광속, 내릴 땐 거북이」는 더피알 2026년 2월 12일자 기사 제목이다. 2026년 7월 현재 세 건 모두 확정 전 단계로, 대한제당과 삼양사는 집행정지가 인용됐고 밀가루·전분당도 불복 방침이다.

밀가루 7개 회사는 2019년부터 6년간 스물네 번에 걸쳐 공급가와 물량을 맞췄다. 그 6년 사이 밀가루 값은 회사에 따라 38%에서 74%까지 올랐다. 전분당 4개 회사는 7년 넘게 열세 번을 합의했고, 값을 최대 73% 끌어올렸다. 담합에 걸린 매출만 밀가루가 5조 7천억 원어치다. 숫자만 보면, 가루 삼형제가 짠 듯이 같은 각본을 돌린 셈이다. 스물네 번이라는 횟수를 잠깐 생각해 본다. 6년 동안 스물네 번이면 석 달에 한 번꼴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딘가에서 만나 값을 맞췄다는 얘기다. 그 정도면 음모라기보다 거의 정기 모임에 가깝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설탕 편 끝에서 나는, 이 회사들이 2007년에도 설탕값을 짜고 올려 걸린 적이 있다고 적었다. 이미 한 번 벌을 받고도 다시 한, 재범이었다는 이야기다. 밀가루도 다르지 않다. 2006년에도 공정위는 여덟 개 제분사의 밀가루 담합을 적발해 과징금을 매겼는데, 그때 걸린 얼굴들과 이번에 걸린 얼굴들은 상당 부분 겹친다. 설탕이든 밀가루든, 20년 전에 한 번 들켰던 사람들이 20년 뒤에 같은 가루로 다시 들킨 셈이다. 달라진 것은 과징금의 크기 뿐이다. 2006년 밀가루 담합의 과징금은 434억 원이었는데, 이번엔 6,710억 원, 열다섯 배가 넘게 무거워졌는데도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왜 이건 먹혔나

바로 앞에서 나는 시멘트를 봤다. 담합으로 값을 부를 힘이 있었지만, 건설이 무너지자 그 힘이 소용없어진 과점이었다. 값을 불러도 살 사람이 없었으니까.

가루는 정반대다. 우리는 빵을 끊을 수 없고, 과자와 음료의 단맛을 피하기도 어렵다. 밀가루도 전분당도 대체할 것이 마땅치 않은 필수재다. 다시 말해, 이 벽 안의 마당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몇몇 회사가 값을 함께 올리면, 그 값은 고스란히 빵집을 거쳐 우리 장바구니로 내려온다. 소비자가 도망갈 곳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필수재를 쥔 과점의 담합이 무서운 이유다. 시멘트의 벽은 마당이 마르며 스스로 힘을 잃었지만, 가루의 벽은 마당이 마르지 않기에 담합이 그대로 통했다. 같은 ‘함께 지키는 벽’이라도, 그 안의 마당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는 이렇게까지 갈린다.

990원짜리 빵이 들춘 것

이 이야기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내가 자주 사 먹는 빵값과 곧장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한 경제 유튜버가 성수동에 작은 빵집을 열었다. 소금빵을 990원에, 시중의 삼분의 일 값에 팔았다. 산지에서 직접 떼 오고, 빵 모양을 단순하게 만들어 인건비를 줄이고, 마진을 비율이 아니라 금액으로 붙였다고 했다. 사람들은 몰려들었지만, 정작 그가 들은 것은 칭찬이 아니라 원망이었다. 다른 빵집들이 비싸게 파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일주일 만에 문을 닫고 사과했다. 싼 빵을 만들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그가 건드린 건 사실 빵집 주인들이 아니었다. 우리 빵값이 유독 비싼 이유를 캐다 보면 임대료와 인건비 같은 유통 비용이 먼저 나오지만, 그 맨 밑에는 이 밀가루가 깔려 있다.

먼저 이 원맥이 어디서 오는지부터. 우리가 먹는 밀은 거의 전부가 수입이고, 그중 빵과 국수가 되는 식용 밀은 미국과 호주, 캐나다 세 나라에서 사실상 전량 들여온다. 오랫동안 미국이 1위였는데, 요즘은 호주가 바짝 따라붙어 해마다 1위를 다툰다. 우리가 반죽하는 밀가루의 뿌리는, 사실 태평양 건너 어느 대륙의 밀밭인 셈이다. 참고로 라면 봉지나 사료로 가는 밀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쪽에서 오는데, 이 흑해의 밀이 세계 밀값 전체를 흔든다.

그 밀밭의 사정에 따라 값은 크게 출렁인다. 밀값을 움직이는 건 대개 세 가지다.

첫째는 전쟁과 정치다. 세계 밀 수출의 큰 몫을 쥔 흑해 연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022년 전쟁에 들어가자, 밀값은 순식간에 역대급으로 치솟았다.

둘째는 날씨다. 미국의 가뭄이나 호주의 홍수 한 번이 그해 작황을, 그리고 값을 통째로 뒤흔든다.

셋째는 환율이다. 밀은 달러로 사 오니, 국제 시세가 그대로여도 원화가 약해지면 우리 수입가는 오른다. 요컨대 원맥값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바깥의 사정들로 정해지고, 국내 제분사도 이 값 앞에서는 그저 사 오는 쪽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 이야기의 급소가 있다. 사 오는 원료값은 바깥세상이 정하지만, 국내에 파는 밀가루값은 몇몇 회사가 손을 맞잡으면 함께 정할 수 있었다. 밀가루값이 빵값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원맥값이 내린 뒤 국내 밀가루값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원료까지 거슬러 올라가 숫자로 맞춰 보면, 조금 이상한 그림이 나온다.

원/KG수입 원맥¹밀가루 환산 원료비²국내 중력분 출고가³제분 마진
2022년529703820117
2023년434578820 (미인하 가정)242
2024년415552820 (미인하 가정)268
2025년400532820 (미인하 가정)288

단위 원/kg. ¹관세청 수입 원맥 단가(CIF, 해상운임 포함). 제분용 밀은 FTA로 관세 0%. 2022·2023년은 관세청 공표치(톤당 52.9만·43.4만 원), 2024·2025년은 수입단가(관세청·USDA) 하락분을 환율로 환산한 근사치. ²제분 수율 75%를 반영해 밀가루 1kg에 들어가는 원맥값으로 환산(밀가루 1kg당 원맥 약 1.33kg). ³공정위가 공표한 중력분 평균 공급가(2022.9 kg당 820원). 담합이 2025년 10월까지 이어져 원료 하락이 반영되지 않은 만큼, 2023~2025년은 그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두었다. 제분 마진은 가공·물류·이익을 포함한 총마진.

표가 말하는 건 단순하다. 원료인 원맥값은 2022년을 정점으로 3년 내리 내려앉았다. 물류비는 수입가에 이미 들어 있고, 관세는 처음부터 없다. 그러니 원료만 놓고 보면 밀가루값도 그만큼 내려갔어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국내 밀가루 출고가는 그대로였다. 내린 원료값을 제품값에 반영하지 않자, 제분사가 1kg마다 쥐는 몫은 2022년 117원에서 2025년 288원으로, 세 해 만에 두 배 반 가까이 벌어졌다. 원료가 오를 때는 즉시 값에 얹고, 내릴 때는 그대로 두는 것, 공정위가 스물네 번의 합의에서 확인한 담합의 문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실제로 공정위는 제분사들이 2020~2022년 원맥 상승기에는 인상을 서두르고,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인하 폭과 시기를 함께 늦췄다고 판단했다. 담합이 멈춘 2026년 초 밀가루 출고가가 곧바로 8% 넘게 내리고 빵과 라면값까지 따라 내린 것이, 그 값이 그동안 얼마나 눌려 있었는지를 거꾸로 보여 준다. 참고로 담합이 시작되던 2019년 말 507원이던 중력분값은, 2022년 820원까지 61.6% 올라 있었다.

산지로는 왜 안 가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일반적인 기업의 경우 원료가 수입 의존적이고 원가경쟁력에 이렇게 휘둘린다면, 아예 밀이 나는 곳으로 올라가면 되지 않냐는 접근법을 고민할 수 있다. 미국이나 호주에 농장을 사고, 항구에 곡물 터미널을 세워 산지부터 직접 쥐는 것 말이다. 사슬을 위로 거슬러 통합한다고들 하는, 바로 그것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심도있게 검토하고 도전도 해보려 했겠으나, 이 회사들은 그러지 않는다. 못 한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밀의 업스트림, 산지에서 곡물을 모으고, 거대한 저장고에 쌓고, 배에 실어 대양을 건너는 그 사슬은, 카길과 ADM을 비롯한 이른바 곡물 메이저 네 곳이 백 년 넘게 쥐고 있다. 곡물마피아라 불리는 이 거대 기업들이 친시장주의에 심장 미국에 본사를 두고 활동하며, 각종 반독점 조사와 제재 속에서도 막강한 시장 지위를 전혀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업의 난이도는 부피는 크고 값은 싸고 마진은 얇은데, 날씨와 전쟁과 환율의 위험은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하는 장사다. 이 문제를 공급망과 금융으로 관리하며 해결하는 능력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이 사 오는 밀은 세계 교역에서 그리 큰 물량도 아니어서, 산지에서 목소리를 낼 힘도 약하다. 그러니 그 사슬의 맨 위로 올라가는 건 자본으로도 규모로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사실 국내 전체로 보면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곡물값이 폭등한 뒤 정부와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 농장을 사고 곡물을 들여오려 했지만, 그렇게 반입한 양은 지금도 한 해 십여만 톤 남짓, 우리가 수입하는 밀 사백만 톤 앞에서는 상징에 가깝다. 업스트림으로 제대로 올라간 것도 제분사가 아니라 포스코인터내셔널이나 팬오션 같은 상사와 해운사였고, 그마저 농장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수출 터미널, 그러니까 사슬의 중간까지였다. 아마도 경험상 농장 자체는 각국의 협동조합들이 엮여있고, 가족경영 형태로 인해 접근 자체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회사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위로 올라가는 대신, 옆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산지를 통합해 원가를 낮추는 어려운 길 대신, 국내에서 값을 맞춰 마진을 지키는 쉬운 길. 밀을 어디서 얼마에 사 오는지는 바꾸지 못해도, 그 밀가루를 국내에 얼마에 파는지는 몇몇이 합의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상류의 벽이 너무 높아서, 이들은 하류에서 자기들끼리 낮은 담을 쌓았다.

번 돈을 게워 내다

그렇게 오래 값을 맞춰 재미를 봤으니, 이 회사들은 지금 두둑할까. 매출과 영업이익은 설탕 편에서 이미 얼추 봤으니, 이번엔 그 아래 한 줄, 최종적으로 손에 남는 당기순이익을 보자. 2025년 결산을 열면 뜻밖의 그림이 나온다.

2025년매출영업이익당기순이익
CJ제일제당7조2,811억1,856억-5,896억
대한제분4,566억373억-459억
삼양사1조8,971억657억-3,183억
대상4조4,013억1,693억-3,031억

※ FY2025 DART 공시(단위: 억원). CJ제일제당·대한제분·삼양사는 별도, 대상은 연결 기준(인력표와 동일). 당기순손실은 2026년 담합 과징금을 미리 반영한 충당부채가 큰 몫을 차지한다.

매출은 여전히 크고, 영업이익도 흑자다. 그런데 맨 오른쪽, 최종적으로 손에 남는 당기순이익이 네 곳 모두 큰 폭의 적자다. 이유는 하나로 모인다. 곧 날아올 과징금을 미리 비용으로 잡아 둔 것이다. 회계에서는 이것을 충당부채라 부른다. 값을 짜고 올려 벌어들인 돈이, 이제 그 담합의 대가로 도로 빠져나갈 자리를 미리 비워 둔 셈이다. 한 해 영업으로 번 것보다 더 큰 과징금이 매겨진 곳도 있다. 오래 지켜 온 값의 벽이, 이번만은 그들 자신을 향해 돌아섰다.

세 가지 오래됨

이 가루 회사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다. 삼양사는 1924년, 대한제분은 1952년에 세워졌다. 밀가루 하나만 70년 넘게 빻아 온 셈이다. 그만큼 그 안의 사람들도 오래 머문다. 숫자로 보면 이렇다.

회사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1인당 매출1인당 영업이익
CJ제일제당8,232명8,411만원9.3년약 8.9억원약 2,300만원
대한제분404명8,440만원13.3년약 11.3억원약 9,200만원
삼양사1,257명8,620만원13.3년약 15.1억원약 5,200만원
대상5,106명6,823만원12.2년약 8.6억원약 3,300만원

※ FY2025 DART 공시 기준. CJ제일제당·대한제분·삼양사는 별도 재무제표 기준(CJ 연결은 대한통운이 포함돼 별도 사용), 대상은 연결 기준.

이 표에는 필수재 과점의 체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1인당 매출은 9억에서 15억까지, 결코 적지 않다. 한 사람이 한 해에 굴리는 가루의 양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매출에서 한 사람 몫으로 남는 이익은 2천만 원에서 9천만 원 사이, 심한 곳은 제 연봉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흐르는 돈은 두터운데, 남는 돈은 얇다. 어쩌면 그 얄팍함이야말로, 이들이 그토록 자주 한자리에 모였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는 몫이 적은 장사일수록, 값을 조금만 함께 올려도 그 몫이 눈에 띄게 불어나니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표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의 짐작일 뿐이다.

오래된 회사, 오래 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오래 이어진 담합. 이 세 가지 ‘오래됨’은 아마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좁은 업계에서 수십 년을 함께 늙어 가면, 값을 맞추자는 말은 조금 더 쉽게 오간다. 담합은 종종 거창한 음모가 아니라, 이웃 사이의 익숙한 눈짓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잠깐, 그 눈짓을 실제로 주고받은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이런 담합은 대개 누군가 혼자 저지르는 일탈이 아니다. 위에서 임원급이 값의 큰 틀을 정하면, 아래에서 영업 실무진이 거래처마다 언제 어떻게 값을 올릴지를 맞춘다. 역할이 위아래로 나뉘고 보고가 오르내리는, 여느 회사의 정식 업무와 다를 바 없는 모양새다. 불법이라는 점만 빼면 대단히 조직적인 일이었다. 설탕 편에서 본 세 회사의 담합이 꼭 그런 구조였다.

그렇다면 그 일을 맡았던 사람들은, 회사 안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확인할 길은 없으니 어디까지나 짐작이지만, 나는 이렇게 그려 본다. 아마 그들은 골칫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일 잘하는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이 조용히 해내는 그 일이 곧 회사의 마진을 지키는 일이었으니까. 민감한 자리를 맡을 만큼 신뢰받고, 임원에게 곧장 보고하고, 좋은 실적으로 평가받고, 그렇게 조금씩 자리를 올렸을 것이다. 바깥의 법에는 어긋나도, 안쪽의 조직에서는 오히려 핵심에 가까운 사람. 어쩌면 그게 이 일의 가장 서늘한 대목이다. 담합이 몇몇 나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은근히 원하고 아끼던 일이었다면, 담당자가 떠나도 그 자리는 남는다. 20년 만에 같은 담합이 되풀이된 이유의 절반쯤은,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가루는 우리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우리 몸을 통과한다. 그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몇몇 회사가 오랫동안 값을 짰고, 그것이 필수재였던 탓에 우리는 꼼짝없이 그 값을 치렀다. 2026년의 세 차례 과징금은, 그 오래된 각본이 뒤늦게 들통난 기록이다. 빵을 먹으면서 문득 생각해 본다. 그동안 내가 치러 온 값 가운데 얼마만큼이 그 익숙한 눈짓의 몫이었을까. 그 일에 가담했던 직원들도 불법이라는 것 그걸 알고도 해야만 했던 그 상황에 놓였던 스스로가 얼마나 안쓰러웠을가.

그런데 세상에는 정반대의 독점도 있다. 시장을 거의 다 쥐고도, 값을 한 푼도 스스로 부르지 못하는 회사. 다음 이야기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이상한 독점. 그 겉보기 독점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질문 하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려 한다. 점유율이 아니라, 값을 스스로 부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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