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제가 키운 K-소부장 이제는 HBM 뒤에서 먼저 돈 번다

반도체 산업을 말할 때 사람들은 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먼저 떠올린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장을 실제로 돌리고 수율을 끌어올리고 납기를 지키게 만드는 힘은 그 뒤편의 소부장에서 나온다. 소재가 한 번만 흔들려도 라인은 멈추고, 장비 한 대가 제때 안 들어와도 증설 일정은 밀리며, 검사·계측이 받쳐주지 못하면 미세공정은 말 그대로 감으로 버티는 산업이 된다. 반도체는 칩 회사만의 산업이 아니라 소부장 체력이 곧 경쟁력인 산업이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불편한 진실을 강제로 들이밀었다.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 같은 핵심 품목이 막히자 다들 위기라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충격이 국산화의 속도를 바꿨다. 솔브레인은 고순도 불화수소 국산화의 대표 사례가 됐고, 동진쎄미켐은 국내 포토레지스트 대표 기업으로 더 선명해졌으며, 소재와 부품, 장비 전반에서 한국 공급망이 훨씬 두터워졌다. 그리고 지금 시장의 돈은 어디로 먼저 가는가. HBM과 첨단패키징 국면에선 메모리 본체보다 본딩, 테스트, 소모성 부품이 먼저 실적을 당기기도 한다. 이 판이 바뀐 것이다.

소재 — 일본 규제가 키운 국산화 (9개사)

소재는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반도체 수율과 공급망 안정성의 뿌리다. 2019년 이후 가장 극적으로 달라진 곳도 여기다. 솔브레인은 고순도 불화수소, 식각액, 전구체, CMP슬러리를 앞세워 삼성과 SK에 공급하는 대표 국산화 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동진쎄미켐은 KrF·ArF 포토레지스트와 CMP슬러리, EUV용 개발까지 이어가며 국내 포토레지스트 대표 기업이라는 위치를 굳혔다. 일본 규제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빨라졌을까. 아마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수가스와 웨이퍼, 전구체도 마찬가지다. SK스페셜티는 NF3 세계 1위이고 WF6도 갖고 있는 특수가스 강자다. 후성은 WF6·C4F6 같은 특수가스와 고순도 불화수소를 보유했고, 원익머트리얼즈는 반도체 특수가스·전구체를 삼성과 SK에 공급한다. 디엔에프는 High-k와 하드마스크(DPT) 전구체를 삼성에 공급하고, 한솔케미칼은 반도체용 과산화수소와 전구체에서 국내 선두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의 웨이퍼사이고 300mm 실리콘 웨이퍼와 SiC를 한다. 에스앤에스텍은 블랭크마스크 국내 유일 기업이며 EUV 펠리클도 개발·양산 초기 단계에 있다. 소재 국산화의 본질은 단순 대체가 아니라 공정 하나하나를 한국 안에서 이어 붙일 수 있는 힘을 갖췄다는 데 있다.

기업주력
동진쎄미켐포토레지스트(KrF/ArF, EUV용 개발)·CMP슬러리 — 국내 포토레지스트 대표, 삼성 공급
솔브레인고순도 불화수소·식각액·전구체·CMP슬러리 — 2019 HF 국산화 대표, 삼성·SK 공급
SK스페셜티특수가스 NF3 세계 1위·WF6 등 — SK 계열(비상장, 구 SK머티리얼즈 특수가스)
후성반도체 특수가스(WF6·C4F6)·고순도 불화수소 (2차전지 LiPF6도)
원익머트리얼즈반도체 특수가스·전구체 — 삼성·SK 공급
디엔에프High-k·하드마스크(DPT) 전구체 — 삼성 공급
한솔케미칼반도체용 과산화수소·전구체 — 국내 선두
SK실트론실리콘 웨이퍼(300mm)·SiC — 국내 유일 웨이퍼사(비상장)
에스앤에스텍블랭크마스크 국내 유일 + EUV 펠리클 개발·양산 초기

전공정 장비 — 증착·식각·세정·열처리 (9개사)

전공정 장비는 한국이 아직도 더 커져야 하는 영역이지만, 이미 무시하기 어려운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세메스는 세정·식각·본딩 등 종합장비를 하는 국내 최대 장비사이고 삼성 계열이다. 원익IPS는 CVD·ALD 증착과 RTP 열처리 장비의 국내 대표 주자고, 주성엔지니어링은 ALD 강자다. 유진테크 역시 ALD·LPCVD 증착 장비 전문 기업으로 존재감이 뚜렷하고, 테스는 PECVD 증착과 건식식각, 세정 장비를 한다. 에이피티씨는 플라즈마 건식 식각 장비에서 SK하이닉스 주력 공급사로 꼽힌다. 케이씨텍은 세정·CMP 장비에 더해 CMP 슬러리까지 하는 드문 겸업 구조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이름은 에이치피에스피다. 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에서 세계 독점 지위를 가져왔고, 2024년부터 예스티가 진입을 시작한 상황이다. 독점이 영원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기술 장벽이 높은 시장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니셈과 GST 같은 스크러버·칠러 업체도 빼놓기 어렵다. 화려하진 않지만 공정 가스를 처리하고 온도를 안정화하는 장비 없이는 라인이 돌아가지 않는다. 전공정 장비에서 진짜 돈이 되는 자리는 범용이 아니라 공정 필수성과 기술 장벽이 동시에 높은 장비다.

기업주력
세메스세정·식각·본딩 등 종합장비 — 국내 최대 장비사(삼성 계열, 비상장)
원익IPS증착(CVD/ALD)·열처리(RTP) 장비 — 국내 대표 전공정 장비
주성엔지니어링ALD 증착 장비·태양광 — ALD 강자
테스PECVD 증착·건식식각·세정 장비
유진테크ALD·LPCVD 증착 장비 전문
에이피티씨플라즈마 건식 식각(에처) 장비 — SK하이닉스 주력
케이씨텍세정·CMP 장비 + CMP 슬러리(소재 겸업)
에이치피에스피(HPSP)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 — 세계 독점(2024~ 예스티 진입 시작)
유니셈·GST반도체 공정 가스 스크러버·칠러

검사·계측 — 눈에 안 보이는 결함을 잡다 (5개사)

검사·계측은 숫자로 드러나는 실적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진다. 미세화가 진행될수록 만드는 기술만큼 보는 기술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넥스틴은 패턴 웨이퍼 다크필드 결함검사 장비에서 KLA 대체 국산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그동안 가장 약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눈의 영역이었는데, 여기서 국산 장비가 자리를 잡는다는 건 상징 이상의 의미가 있다.

파크시스템스는 더 분명하다. 산업용 원자현미경 AFM 계측에서 세계 1위이고 산업용 기준 약 80%를 차지한다. 오로스테크놀로지는 오버레이 계측 장비를 삼성과 SK에 공급하고, 인텍플러스는 반도체 패키지·기판 외관검사 장비를 한다. 펨트론은 3D SPI와 AOI 등 검사·계측 장비를 맡는다. 눈에 안 띄는 결함 하나가 수율을 무너뜨리는 산업에서 이들의 역할은 뒤늦게 평가받는 편이다. 초미세 공정 시대에는 잘 만드는 회사보다 먼저 잘 보는 회사가 더 희소하다.

기업주력
넥스틴패턴 웨이퍼 다크필드 결함검사 장비 — KLA 대체 국산화
파크시스템스산업용 원자현미경(AFM) 계측 — 세계 1위(산업용 ~80%)
오로스테크놀로지오버레이(중첩 정렬) 계측 장비 — 삼성·SK 공급
인텍플러스반도체 패키지·기판 외관검사 장비
펨트론3D SPI/AOI 등 검사·계측 장비

후공정·부품 — HBM 시대의 진짜 수혜주 (10개사)

지금 시장에서 가장 먼저 체감되는 수혜는 후공정과 부품으로 가고 있다. HBM이 대표적이다. 한미반도체는 HBM용 TC본더 세계 1위이고 점유율은 약 71%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공급한다. 이건 그냥 좋은 장비 회사가 아니라 HBM 증설의 관문에 서 있는 회사라는 뜻이다. 테크윙은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 세계 1위로 약 70% 점유율을 갖고 있고, HBM 큐브프로버 신사업도 붙는다. 메모리 회사가 잘돼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메모리 회사가 HBM을 늘리려면 이들 장비를 먼저 사야 한다. 누가 먼저 돈을 버는지 이제 보이지 않는가.

티씨케이는 식각용 SiC 포커스링 세계 1위로 약 80% 점유율을 가진다. 하나마이크론과 SFA반도체는 OSAT 영역에서 국내 대표 선수들이고, 디아이·유니테스트·엑시콘은 메모리·SSD 번인과 테스터 쪽에서 후공정 테스트를 맡는다. 원익QnC는 쿼츠웨어와 세라믹 같은 소모성 부품을, 하나머티리얼즈는 식각용 실리콘·SiC 링과 전극 소모품을 하며 TEL에 공급한다. 미코는 세라믹 히터와 정전척 ESC에서 미코세라믹스를 통해 일본 의존 국산화 흐름에 올라탔고, 월덱스는 식각용 실리콘 전극과 쿼츠 부품을 맡는다. HBM 시대의 실속은 메모리 칩 한가운데보다 그것을 쌓고 붙이고 검사하고 버티게 하는 후공정 소부장에 더 빠르게 쌓인다.

기업주력
한미반도체HBM용 TC본더(열압착 본딩) 세계 1위(점유율 ~71%) — SK하이닉스·마이크론 공급
테크윙메모리 테스트 핸들러 세계 1위(~70%)·HBM 큐브프로버 신사업
티씨케이식각용 SiC 포커스링 세계 1위(~80%) — 글로벌 장비사 납품
하나마이크론국내 대표 OSAT(반도체 패키징·테스트) — 하나머티리얼즈 계열
SFA반도체OSAT(패키징·테스트)
디아이·유니테스트·엑시콘메모리·SSD 번인/테스터 — 후공정 테스트
원익QnC쿼츠웨어·세라믹 등 소모성 부품
하나머티리얼즈식각용 실리콘·SiC 링/전극 소모품 — TEL 공급
미코세라믹 히터·정전척(ESC) — 미코세라믹스(일본 의존 국산화)
월덱스식각용 실리콘 전극·쿼츠 부품

앞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

이제 소부장 자립은 산업정책 구호가 아니라 공급망 안보다. 특정 국가의 규제 한 번에 흔들리던 시절을 이미 겪었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건 국산화라는 단어를 애국 소비처럼 다루는 게 아니라, 실제로 대체 가능한 품목이 얼마나 늘었고 어느 공정에서 한국 기업이 협상력을 가졌는지를 보는 일이다. 동진쎄미켐, 솔브레인, SK스페셜티, 세메스, 원익IPS, 넥스틴, 파크시스템스, 한미반도체, 테크윙, 티씨케이 같은 이름들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좌표다. 공급망 안보는 결국 국산화 비율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소부장 기업을 몇 개 가졌느냐의 문제다.

앞으로 판은 더 분명해질 가능성이 크다. HBM과 첨단패키징이 커질수록 본딩, 테스트, 계측, 소모성 부품의 중요도는 더 올라간다. 전공정이 메모리 산업의 심장이었다면, 다음 사이클에서는 후공정과 부품이 현금흐름의 앞줄에 설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을 볼 때 이제는 완성품 회사만 보던 습관을 버려야 한다. 공장을 진짜로 움직이는 회사들, 위기가 왔을 때 대체할 수 있는 회사들, 증설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발주가 들어오는 회사들을 봐야 한다. 그게 지금 K-소부장의 진짜 반전이다.

※ 본 글은 공개 자료를 웹 검증해 사명·주력사업·시장지위를 정리한 것이며, 일부 평가는 필자 견해입니다. 투자 판단의 직접 근거가 아닙니다.

작성: 2026. 7. 이알렉산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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