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은 멈춘 뒤부터 더 길다 해체와 폐기물이 여는 다음 시장

원전 산업을 말할 때 우리는 대개 짓는 단계에만 시선을 둔다. 하지만 원전은 전기를 만들고 끝나는 설비가 아니다. 멈춘 뒤가 더 길다. 고리1호기는 2017년 영구정지 이후 국내 첫 상업 원전 해체로 향하고 있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는 포화 압박이 커지고 있으며, 고준위 방폐장은 아직 부지도 정하지 못했다. 원전의 진짜 뒷정리는 이제부터인데, 한국은 그 문턱 앞에 서 있다.

그래서 지금 봐야 할 키워드가 후행핵주기다. 해체, 제염, 방사선관리, 사용후핵연료 저장, 방폐 처분, 안전해석과 엔지니어링까지 포함한 시장이다. 다만 들뜰 일만은 아니다. 국내 상업 해체는 아직 인허가 심사 단계이고, 고준위 방폐장은 수십 년째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기대는 크지만 매출은 아직 미래형인 기업이 많다. 그 현실을 빼고 말하면 산업을 제대로 보는 게 아니다.

해체·정비·제염 — 원전을 안전하게 뜯다 (4개사)

해체는 폭파가 아니라 공학이다. 무엇을 먼저 떼어내고, 어디까지 오염됐는지 확인하고, 어떤 기준으로 규제해제를 받을지 설계와 정비, 제염과 방사선관리가 촘촘하게 맞물려야 한다. 국내 해체 시장의 본질은 철거가 아니라 정밀한 절차 산업이라는 데 있다.

이 구간에서 눈에 들어오는 회사들은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한전KPS는 발전정비 공기업으로서 원전 정비 기반의 제염·해체 시공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상용 해체 실적은 아직 전이다. 오르비텍은 원전 가동중검사(ISI), 방사선관리, 규제해제를 바탕으로 해체 시장에 신규 진출하는 그림이다. 우진엔텍은 우진 계열로 원전 계측제어설비 가운데 비안전등급 정비를 맡아왔고, 해체 수혜 기대와 함께 2024년 상장했다. 한전기술은 원전 해체 설계와 안전성평가(PSR)에서 설계 부문 국내 독점이라는 위치가 분명하지만, 실제 해체는 컨소시엄 공동 수행이라는 점을 같이 봐야 한다. 누가 주인공이냐고 묻기보다, 누가 어느 공정의 언어를 갖고 있느냐고 묻는 편이 맞다.

기업주력
한전KPS원전 정비 기반 제염·해체 시공 기술 — 발전정비 공기업(상용 해체 실적은 아직 전)
오르비텍원전 가동중검사(ISI)·방사선관리·규제해제 — 해체 시장 신규 진출
우진엔텍원전 계측제어설비(비안전등급) 정비 — 우진 계열, 해체 수혜 기대(2024 상장)
한전기술원전 해체 설계·안전성평가(PSR) — 설계는 국내 독점(단 해체는 컨소시엄 공동 수행)

사용후핵연료·방폐·엔지니어링 — 남은 것을 처분하다 (3개사)

원전을 멈춘 뒤 더 어려운 질문은 남은 것을 어떻게 둘 것이냐는 문제다. 사용후핵연료는 저장해야 하고, 방사성폐기물은 처분해야 하며, 그 전 과정은 해석과 검증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후행핵주기의 병목은 해체보다도 저장과 처분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 용기인 캐스크 종합설계를 수주했고, 미국 TMI 캐스크 수출 실적도 있다. 미래와도전은 비상장사로 원자력 안전해석 소프트웨어와 엔지니어링, 해체와 안전성평가 영역에 걸쳐 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경주 중·저준위 처분장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는 비상장 공기업으로, 방사성폐기물 처분의 현재를 사실상 혼자 떠받치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고준위 방폐장 부재라는 가장 큰 공백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캐스크가 늘어나도, 해석이 정교해져도, 최종 처분의 정치가 멈춰 있으면 시장은 반쪽일 수밖에 없다.

기업주력
두산에너빌리티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 용기(캐스크) 종합설계 수주 — 美 TMI 캐스크 수출 실적
미래와도전원자력 안전해석 SW·엔지니어링(해체·안전성평가) — 비상장
한국원자력환경공단방사성폐기물 처분 — 경주 중·저준위 처분장 국내 유일 운영(비상장 공기업)

앞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

그래도 판은 열린다. 전 세계적으로 노후 원전이 늘고 있고, 해체는 수십조 원대 신시장으로 거론된다. 한국 기업들에도 기회는 있다. 정비 기반 시공, 방사선관리, 해체 설계, 안전해석, 캐스크, 방폐 운영 경험은 각각 해외 프로젝트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앞으로 SMR이 늘어나면 후행핵주기도 같이 따라온다. 짓는 시장만 보고 달리던 기업들에겐 결국 해체와 폐기물이 다음 장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냉정해야 한다. 국내 상업 해체는 아직 착수 전이고, 고리1호기 역시 인허가의 마지막 문턱을 넘는 중이다. 고준위 방폐장은 부지조차 없는 상태다. 이 글에 나온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원전을 짓는 사업도 함께하고 있고, 지금 후행 사업의 숫자는 적지 않게 기대를 선반영한 성격이 있다. 이 시장은 분명 커질 텐데, 한국에서는 개막 기대와 지연 리스크를 동시에 안고 간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봐야 한다. 원전은 세우는 산업이면서, 언젠가 반드시 치우는 산업이기도 하니까.

※ 본 글은 공개 자료를 웹 검증해 사명·주력사업·시장지위를 정리한 것이며, 일부 평가는 필자 견해입니다. 투자 판단의 직접 근거가 아닙니다.

작성: 2026. 7. 이알렉산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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