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기업-2] 추위를 대신 맞는 거인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들어온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그 일을 하면서, 정작 그 일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겨울 아침에 보일러를 켤 때도 마찬가지다. 파란 불꽃이 조용히 올라오고, 방이 데워지고, 우리는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그 불꽃이 어디서 어떻게 흘러들어 온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이야기에서 나는 벽에 관해 썼다. 국가가 법으로 세워 준 벽, 그 안에서 강원랜드와 KT&G가 어떤 표정으로 사는지에 대해. 오늘의 벽은 종류가 조금 다르다. 이번 벽을 세운 것은 법이 아니라 자연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사물의 이치라고 부르는 편이 맞겠다.
전선을 떠올려 보자. 혹은 도시의 땅 밑을 지나는 가스 배관을. 한 나라에 전선망을 두 벌 깔거나, 가스 배관을 두 겹으로 묻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낭비다. 그래서 이런 사업은 처음부터 하나일 수밖에 없다. 경쟁자가 없어서 하나인 게 아니라, 둘이 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서 하나인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걸 자연 독점이라고 부른다. 자연이 세운 벽. 그 벽 안에 사는 대표적인 두 회사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다.
한전은 전기를 만들지 않는다. 의외로 들리겠지만 그렇다. 전기를 만드는 일은 한수원이나 발전자회사들의 몫이고, 한전은 그들이 만든 전기를 도매로 사서, 전국에 깔린 전선으로 실어 나른 다음, 집과 공장에 소매로 판다. 말하자면 전기의 유통상이다. 다만 파는 쪽에서는 경쟁자가 없는 유통상이다.
한국가스공사가 하는 일도 구조는 같다. 해외에서 LNG(액화천연가스, 부피를 줄이려고 영하 162도로 얼려 배로 실어 나르는 천연가스)를 사다가, 배로 들여와, 땅 밑의 배관으로 발전소와 도시가스 회사에 넘긴다. 가스의 유통상이다.
다만 이쪽 벽에는 문이 하나 나 있다. 발전소나 대공장은 한국가스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LNG를 사올 수 있다. 직수입이라고 부르는 제도다. 몇몇 대기업 계열 에너지사들이 이 문으로 드나들고, 그 물량이 이제 나라 전체 도입량의 4분의 1을 넘본다.
문이 있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문이 한쪽으로만 열린다는 데 있다. 국제 가스값이 쌀 때, 직수입사들은 문을 활짝 열고 사들인다. 값이 뛰면 문을 닫고 물러선다. 그들에게는 그럴 자유가 있다. 가스공사에는 없다. 이 회사는 나라의 수급을 책임지는 회사라서, 값이 미쳐 돌아갈 때도 사야 한다. 아니, 값이 미쳐 돌아갈 때일수록 더 사야 한다. 남들이 물러선 자리의 물량까지 떠안아야 하니까. 좋은 손님은 문으로 나가고, 나쁜 계산서는 배관에 남는다.
가스공사가 들여온 LNG의 상당량은 발전소로 가서 전기가 되고, 그 전기를 한전이 사다 판다. 가스공사의 도입 가격이 오르면 발전 단가가 오르고, 발전 단가가 오르면 한전이 사오는 값이 오른다. 가스배관이 이어지다가 끝에 가면 전선이 붙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 두 회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완벽한 독점을 누리면서도, 최근 몇 해 동안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돈을 잃었다. 벽이 이렇게까지 튼튼한데, 어째서일까.
값을 정하지 못하는 독점
강원랜드는 베팅 한도를 스스로 올렸다. KT&G도 담뱃값을 스스로 정한다. 벽 안에 사는 회사의 특권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손님이 달리 갈 데가 없으니, 값은 내가 부르면 된다. 뭐 이쯤 되면 불공정거래가 이런 게 아니냐고 의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도박으로 돈을 벌면 폐광기금이 많아져 정부가 행복하고, 담배를 많이 팔면 세금과 부담금이 많아져 또 정부가 기분 좋아진다. 결국 한 단계 더 들여다보면 “값을 부르는 건 벽의 주인인 국가이고, 회사는 그 벽 안에서 임대료를 나눠 갖는다”는 로직이다.
그런데 한전에게는 그 특권이 없다. 전기요금을 정하는 것은 한전이 아니라 정부다.
여기에 이 회사의 운명이 통째로 들어 있다. 한전은 전기를 만들려고 석탄과 LNG를 사 온다. 그 연료의 값은 서울이 아니라 저 멀리 국제 시장에서, 전쟁과 날씨와 환율에 따라 쉴 새 없이 출렁인다. 다시 말해 원가는 시장이 정한다. 그런데 파는 값, 그러니까 전기요금은 정부가 정한다. 물가를 자극할까 봐, 서민 부담이 클까 봐, 때로는 선거가 가까워서. 이유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결론은 늘 하나다. 원가는 시장이 정하고 가격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하는 회사. 그 둘 사이에 벌어진 틈은 고스란히 한전의 몫으로 남는다.
2022년, 그 틈이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 에너지 값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연료값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전기요금은 제자리에 묶여 있었다. 한전은 원가보다 싼값에 전기를 팔았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장사를, 그것도 나라 전체를 상대로 했다. 그해 한전이 낸 영업적자는 32조 7천억 원. 한 회사가 1년에 낸 적자로는 이 나라에서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숫자였다.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그 시절 평범한 직장인의 눈으로 짐작해 보자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 해야 한다는 절대적 원칙 하에, 모든 결론은 위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위에서. 나랏일을 하는 분들이 먼저 그림을 그렸고, 담당 직장인은 그 그림에 맞는 증거를 골라 액자에 끼웠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짐작이다.
물론 그럴듯한 근거는 있었다. 미국의 셰일 리그가 늘어나고 있었고, 천연가스는 마치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원자재에는 사이클이라는 게 있다. 값이 싸지면 리그가 멈추고, 리그가 멈추면 공급이 줄고, 공급이 줄면 값은 다시 오른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애널리스트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만 그 이야기를 보고서에 쓰는 것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한국 직장 문화에서 정해진 결론에 반하는 문장을 올리는 일은, 잘 차려진 저녁 식탁에서 혼자 젓가락을 내려놓는 일과 비슷하다.
그렇게 한 나라의 에너지 믹스가 변동성 큰 자산 하나에 걸렸다. 헤지 없는 레버리지 포지션. 시장이 우호적일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장은, 언젠가는 반드시 우호적이지 않게 된다. 2022년 2월이 그랬다.
| 연도별 | 금액 | 그때의 풍경 |
|---|---|---|
| 2021 | -5조 8,000억원 | 틈이 벌어지기 시작 |
| 2022 | -32조 7,000억원 | 사상 최대 적자 |
| 2023 | -4조 5,000억원 | 요금 인상으로 출혈 둔화 |
| 2024 | +8조 4,000억원 | 흑자 전환 |
| 2025 | +13조 5,000억원 | 창사 이래 최대 흑자 |
※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2021년부터 3년 동안 한전이 쌓은 적자는 다 합쳐 43조 원에 이른다. 그리고 그 구멍을 메우려고 빌린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 부채는 200조 원을 넘어섰다. 하루에 물어야 하는 이자만 100억 원대다. 세상에서 손꼽히게 안전한 독점 사업을 하는 회사가, 세상에서 환장하게 무거운 빚을 짊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시간이 흘렀다. 2025년, 한전은 13조 5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숫자였다. 3년 전에는 창사 이래 가장 큰 적자를 냈던 회사가. 그 사이 요금은 일곱 번 올랐고, 그 일곱 번 중 마지막 두 번은 가정집은 건드리지 않고 공장 요금만 올렸다.
그런데 나는 이 숫자 앞에서 마냥 손뼉을 칠 수가 없다. 이 흑자는 한전이 갑자기 장사를 잘하게 되어 생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연료값이 내려갔고, 요금이 올랐을 뿐이다. 둘 다 한전이 정한 것이 아니다. 사오는 값은 시장이 정하고, 파는 값은 정부가 정한다. 적자도 흑자도 자기 손 밖에서 결정되는 회사. 이익의 방향만 바뀌었을 뿐, 회사의 처지 자체는 그대로다.
그리고 올라간 전기 요금은 어딘가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공장의 원가로 옮겨 앉을 뿐이다. 이 나라는 전기를 먹여서 물건을 만드는 나라다. 반도체도, 철강도, 결국은 전기를 다른 형태로 바꾼 것이다. 숫자를 보자. 2021년, 한국 공장들은 전기를 1킬로와트시에 105원쯤 주고 썼다.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값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값은 182원이 되었다. 73%. 같은 기간 중국은 요금을 묶어두었고, 지금도 127원 수준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지금 당장 국민이 짊어져야 할 청구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수신인의 이름만 바뀔 뿐이다. 사상 최대 흑자를 낸 지금도 한전에는 206조 원의 부채가 남아 있고, 하루에 이자로만 119억 원이 나간다. 흑자 전환, 이라는 네 글자 뒤에서, 청구서는 아직 다 돌지 않았다.
미수금이라는 이름의 상처
한국가스공사의 재무제표에는, 다른 회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항목이 하나 있다. 미수금이라고 적힌 자리에 13조 8천억 원이라는 숫자가 놓여 있다. 회계 장부에서 미수금은 자산이다. 받을 돈, 언젠가 내 주머니로 들어올 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13조 8천억 원은, 곰곰이 들여다보면 조금 이상한 자산이다.
사정은 이렇다. 겨울마다 도시가스 요금은 원가보다 낮게 묶인다. 난방비 폭탄이라는 말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이 무서워서다. 그러면 가스공사는 원가와 요금 사이의 차액을, 언젠가 요금을 올려 돌려받겠다는 약속으로 장부에 적어 둔다. 그게 미수금이다. 바꿔 말하면 이 자산은, 우리가 그동안 덜 낸 난방비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낼 난방비이기도 하다. 가스공사가 대신 짊어지고 있는, 국민 전체의 외상값인 셈이다.
| 지표 | 수치 | 덧붙이는 말 |
|---|---|---|
| 매출 | 약 35조 7,273억원 | 유가 하락에 판매단가 -8.3% |
| 영업이익 | 약 2조 1,012억원 | 전년 대비 -9,022억원 |
| 당기순이익 | 약 1,323억원 | 전년비 -89%, 이자가 이익을 삼킴 |
| 민수용 원료비 미수금 | 약 13조 8,649억원 | 사실상 국민의 외상값 |
※ 2025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2025년 가스공사는 2조 1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숫자만 보면 멀쩡하다. 그런데 한 칸 아래로 내려가면 당기순이익은 1,323억 원까지 쪼그라든다. 전년보다 89% 줄어든 값이다. 빚에 물리는 이자가 이익의 대부분을 삼켜 버린 탓이다. 부채비율은 397%.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득한 숫자다. 그 와중에 미수금 13조 8천억 원은 거의 줄지 않은 채, 장부 위에서 조용히 아물기를 기다리고 있다. 상처가 아무는 데에는, 앞으로 여러 번의 겨울이 더 필요할 것이다.
벽은 이익까지 지켜 주지 않는다
지난 이야기의 강원랜드와 KT&G는, 벽 안에서 편안했다. 벽이 경쟁자를 막아 주었고, 값은 자기가 불렀고, 그래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한전과 가스공사의 벽은 다르다. 이 벽도 경쟁자만은 완벽하게 막아 준다. 다만 이익까지 지켜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벽 안에 있기 때문에, 이들은 힘들어도 도망칠 수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구조다. 전기와 가스는 멈추면 안 되는 것들이다. 한겨울에 난방을 끊을 수는 없고, 병원의 불을 내릴 수도 없다. 그래서 이 회사들은 아무리 손해가 나도 공급을 멈추지 못한다. 국제 연료값이 폭등하면, 그 충격은 원래 우리 각자의 고지서로 날아와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 충격을 요금에 다 싣지 않는다. 대신 한전과 가스공사가 그 사이에 서서, 충격의 대부분을 제 몸으로 흡수한다. 43조 원의 적자와 13조 8천억 원의 미수금은, 실은 우리가 겨울마다 느끼지 않아도 됐던 추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이 두 회사를 볼 때는, 손익계산서의 맨 윗줄보다 그 뒤에 선 사람들을 함께 봐야 한다. 이들의 흑자는 온전히 이들의 것이 아니고, 이들의 적자 역시 온전히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벽 안에 있으면서도 값을 정하지 못하는 독점. 완벽하게 보호받으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붙들려 있는 회사. 나는 이런 회사에서 어딘가 쓸쓸한 위엄 같은 것을 느낀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
그럼에도 이런 회사의 울타리 안이 얼마나 안온한지는, 그 안에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를 보면 안다.
| 회사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연수 |
|---|---|---|
| 한국전력공사 | 약 7,900만원 | 약 14.9년 |
| 한국가스공사 | 약 9,400만원 | 약 16.5년 |
※ FY2025 사업보고서 기준. 본사 인원만 집계한 별도 어림값으로, 자회사와 해외 법인은 빠져 있다.
두 회사 모두 평균 근속이 15년 안팎이고, 연봉은 8천만~9천만 원대다. 사람들이 ‘신의 직장’이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값을 정치가 정하고 적자가 나도 대표만 바뀌는 그 구조가, 아이러니하게도 직원에게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안정으로 돌아온다.
벽이 회사의 이익은 못 지켜도, 그 안 사람들의 자리만은 지켜 주는 셈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하는 쪽이 늘 이 대목을 겨냥하는 것도 그래서다.
다음 이야기는 또 다른 벽에 관한 것이다. 이번엔 국가도 자연도 아닌, 우리 손으로 세운 벽이다. 우리가 매일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열어 보는 카카오톡과 네이버. 습관이라는 이름의 벽은, 과연 얼마나 견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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