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서문 ·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포지셔닝’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난 것은 마케팅 책에서였다. 그런데 이 단어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케팅보다 훨씬 넓은 것이 보인다. 사람이든 회사든 국가든, 결국 어디에 서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자리에는 대개 벽이 둘러쳐져 있다.

회사에는 내 역할이 있고, 그 자리를 지키는 데 내 능력이 조용히 대입된다. 누군가 그 영역에 발을 들이면 나는 방어를 하고, 때로는 정치라 불리는 다소 피곤한 일까지 제법 능숙하게 해내야 한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같은 것을 바라고 있다.

‘아, 나를 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무엇이고,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더 잘하게 되는 그런 것이면 좋겠다.’

대단한 야망은 아니다. 오래 신어 발에 꼭 맞는 운동화 같은, 소박하지만 좀처럼 대체되지 않는 자리. 사람이 바라는 건 대체로 그 정도다.

면허라는 벽

그래서 이 나라에서 교육비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로 계산된다. 그러면 실제로 얼마가 드는지부터 따져 보자.

국가데이터처가 매년 발표하는 초중고 사교육비조사를 보면, 2025년 기준 사교육을 받는 학생 한 명에게 들어가는 돈은 월평균 60만 4천 원이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교 51만 2천 원, 중학교 63만 2천 원, 고등학교 79만 3천 원. 가장 많이 쓰는 학년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80만 6천 원이다.

이것을 열두 해 동안 이어 붙이면 이렇게 된다. 초등학교 여섯 해에 3,686만 원, 중학교 세 해에 2,275만 원, 고등학교 세 해에 2,855만 원. 합쳐서 8,816만 원이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학원비로만 9천만 원 가까이 나간다는 뜻이다.

이 숫자에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비용은 한 푼도 들어 있지 않다. 학교에 내는 돈도, 교재도, 대학 등록금도 빠져 있다. 순수하게 학교 밖에서 쓴 돈만 세어 그렇다는 얘기다. 아래의 계산에서도 이 8,816만 원만 쓰기로 한다. 통념으로 도는 총 양육비 숫자들이 있지만 출처마다 편차가 크고, 어차피 이 액수만으로도 이야기는 충분히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계산을 온 나라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교육비 총액은 2024년 29조 2천억 원에서 2025년 27조 5천억 원으로 5.7% 줄었다. 2020년 이후 다섯 해 만의 감소다. 얼핏 반가운 소식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총액이 준 것은 참여율이 75.7%로 4.3%포인트 떨어졌기 때문이고, 정작 끝까지 남아 사교육을 시키는 집이 아이 하나에 쓰는 돈은 처음으로 60만 원을 넘어 역대 최고를 찍었다. 포기한 사람은 조용히 대열에서 빠지고, 끝까지 남은 사람은 더 깊이 건다. 벽 앞의 풍경이란 대체로 그런 것이다.

여기에 의대 여섯 해의 등록금과 생활비로 1억을 더 얹는다고 하자. 그래서 자녀가 벽 안으로, 이를테면 의사면허 안으로 들어간다면 무엇을 얻는가.

보건복지부가 3년 주기로 실시하는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의사의 연평균 임금은 2억 3,070만 원이다. 다만 평균이라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같은 조사에서 개원의는 2억 9,428만 원, 봉직의는 1억 8,539만 원이다. 벽 안에도 층이 있다.

돈이 언제부터 들어오는지도 따져야 한다. 의대 6년에 수련 5년, 남자라면 군의관 3년까지. 소득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서른 중반이다. 그러니 서른다섯부터 예순다섯까지 삼십 년으로 보는 편이 정직하다.

이제 두 사람이 평생 버는 돈을 나란히 놓아 보자. 서른 해 뒤의 1억과 오늘의 1억은 같은 돈이 아니므로, 할인율 5%를 적용해 서른 살 시점의 현재가치로 환산한다. 비교 대상은 대졸 사무직으로 서른부터 예순까지 연 7천만 원을 버는 경로다.

직업의사대졸 사무직
소득 개시35세30세
연 소득2.31억 원0.70억 원
기간30년30년
30세 시점 현재가치27.7억 원10.8억 원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사람의 인생보다 17억 원어치 비싸다. 의사 면허 하나가 만드는 차이가 이 정도다.

그러면 그 17억을 얻기 위해 무엇을 더 지불했는가. 여기서 계산이 조금 재미있어진다. 대졸 사무직도 학원에 다녔고 대학 등록금을 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투자 구성 (명목)의사대졸 사무직
사교육비 12년0.88억 원0.88억 원
대학 등록금·생활비1.00억 원 (6년)0.50억 원 (4년)
소득 개시 지연3.50억 원 (5년)
5.38억 원1.38억 원

두 경로의 차이는 4억 원이다. 그런데 그 4억의 구성이 통념과 다르다. 학원비는 양쪽이 똑같이 쓰므로 애초에 차이가 아니고, 등록금 차이는 5천만 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3억 5천만 원, 그러니까 차이의 대부분은 남들이 버는 동안 벌지 못한 다섯 해다. 벽을 넘는 값은 돈이 아니라 시간으로 치른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추가로 4억을 넣어 17억을 얻는다. 이 현금흐름의 순현재가치는 16억 원, 투자배수는 5.4배, 내부수익률은 연 18.5%다. 게다가 이 계산에는 임금 상승이 들어 있지 않다. 앞의 조사에서 의사는 직전 십 년간 임금이 가장 빠르게 오른 직종이었다. 연평균 상승률 5.2%. 벽이 두꺼워지는 속도까지 넣으면 수익률은 더 올라간다.

개이득 아닌가. 저속한 표현이 싫다면 합리적인 자원 배분이라 불러도 좋다. 본질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조금 더 들어가 의사들의 세계를,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의룡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구조는 한결 선명해진다. 먼저 밝혀두자면 나는 그들의 직업적 가치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새벽 세 시에 응급실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은 문명이 우리에게 건네는 몇 안 되는 진짜 위안 중 하나니까.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벽은 오래 두껍게 유지되어 왔다. 의료계와 제약업계 사이의 금품 거래를 양쪽 모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2010년에야 도입되었다는 사실은, 그 이전이 어떠했는지를 조용히 짐작하게 한다. 물론 벽 안에서도 잘나가려면 엄청나게 아등바등해야 한다. 벽 안에는 또 벽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쉰만 넘으면 회사 밖으로 소리 없이 밀려나는 보통의 회사원 눈에 그것이 대단한 특혜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오를 수 있을 것처럼 생긴, 마지막 사다리 같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2024년 의대 정원을 두고 나라 전체가 그토록 시끄러웠던 것도 결국 같은 이유였다. 그리고 그 소동의 끝을 보라. 2025학년도에 한 번 늘어났던 정원은 2026학년도에 이르러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조용히 되돌아갔다. 사다리 칸을 하나 늘려 보려던 시도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것이다. 마지막 사다리 앞에서 사람은 대체로 이성을 잃는다. 그리고 그 사다리는 좀처럼 넓어지지 않는다.

국가도 같은 문법으로 산다

시야를 넓혀 보면 국가라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타고난 자원이 있고, 그것으로 무역을 하고, 나만 가진 것의 값을 키우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기르고 문화라는 방패를 두껍게 만든다. 네덜란드의 ASML이 만드는 EUV 노광장비는 지구상에서 오직 그 회사만 만들 수 있다. 파장이 아주 짧은 빛으로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장비다. 그래서 그 기계 한 대가 국가와 국가 사이의 외교 카드가 된다. 포지셔닝을 끝까지 밀고 가면 그렇게 된다.

정치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겠다. 다만 오래된 드라마 하나가 떠오른다. 「모래시계」였던 것 같다. 수업 거부를 하던 학생운동 무리가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학생을 타박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자 그 학생이 조용히 되묻는다. 독재가 반대 목소리를 못 내게 해서 시위를 하는 것인데, 그 시위에 반대할 자유마저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독재와 무엇이 다르냐고.

결국 카르텔이다. 정의든 정치든 상관없이, 사람은 경계를 치고 그 안쪽에 서고 싶어 한다. 내 안으로 들어오려거든 엄청난 것을 지불해야 할 거라고, 그래도 다 보답받게 된다고, 이 모든 게 운이라고 불리는 능력이라고 말하면서. 삼성전자처럼 거대한 기업조차 2026년 지금 성과급 같은 문제로 벽과 벽 사이의 자리다툼에 몸살을 앓는다. 아무리 다른 점을 찾으려 확대해 봐도 늘 같은 무늬가 나온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정당한 질문이다. 실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경계 안에 들지 못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가.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라. 유감스럽지만 그것이 가장 정직한 첫 번째 대답이다. 안 된다면 조금 더 작은 벽을 찾아보자. 세상에 의사면허만 벽인 것은 아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골목 안쪽에도 작지만 제법 튼튼한 담장은 있다. 그것마저 아니라면 아예 다른 종류의 행복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이건 패배 선언이 아니라 그저 게임의 판을 바꾸는 일일 뿐이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소개할 기업들은 하나같이 좋은 자리에 서 있다. 그래서 그런 곳에 유무형의 투자를 하라는 의견으로 읽힐 대목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벽 안의 사람들도 함께 들여다볼 생각이다.

적어도 이런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쟁이 적으니 그 자리를 움켜쥐기 위해 꽤나 비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퀄리티 같은 그럴싸한 단어를 입에 올리며, 보고서 한 장을 놓고 고성이 오간다. 상사의 자그마한 독재를 성실히 유지시켜 드려야 한다. 그것이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방식이고, 언젠가 올 내 차례까지 버티게 해 주는 힘이니까. 안쓰럽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그 정도 거래라면 나쁘지 않은 편 아닌가.

결국 기업이나 사람이나 똑같다. 벽 안으로 들어가야 산다. 그러니 나도, 혹시 이 글을 읽고 있을 취업준비생도, 우리 다 같이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나는 어떤 벽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팔릴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사 줄 벽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우물은 깊고 아래는 대체로 어둡다. 하지만 직접 내려가 보지 않으면 바닥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영영 알 수 없다. 우리, 한번 내려가 보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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