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열풍보다 더 뜨거운 곳은 감속기와 구동계다

요즘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는 협동로봇과 휴머노이드에 쏠려 있다. 그런데 현장을 오래 보다 보면 진짜 돈이 어디서 막히고, 어디서 풀리는지 금방 보인다. 로봇을 멋지게 세워놓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그 몸을 오래, 정확하게, 반복해서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다. 그 원가의 한복판에 감속기, 모터, 드라이브, 구동계가 있다. 많게는 로봇 원가의 절반 이상이 이쪽에서 갈린다. 휴머노이드가 뜰수록 완성로봇보다 감속기·모터·구동계의 가치와 협상력이 더 커진다.

문제는 이 핵심부품이 오랫동안 일본과 유럽의 벽 안에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로봇 관절의 심장으로 불리는 하모닉 감속기는 일본 하모닉드라이브가 세계를 지배해 왔고, 정밀 감속기와 구동계 전반도 해외 강자들의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지금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다만 냉정해야 한다. 국산화가 시작됐다고 해서 곧바로 판이 뒤집힌 것은 아니다. 아직은 초기 양산, 일부 적용, 단계적 확장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래도 신호는 분명하다. 완성로봇 열풍 뒤에서 부품 생태계가 드디어 자기 이름을 갖기 시작했다.

감속기·구동계 — 로봇의 관절, 최대 병목 (5개사)

로봇의 관절을 이루는 감속기와 구동계는 늘 병목이었다. 작은 오차가 전체 동작 품질을 무너뜨리고, 공급이 막히면 생산계획 자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이 영역은 늘 기술보다 공급망의 문제이기도 했다. 지금 한국 로봇 산업에서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완성로봇 숫자가 아니라 감속기·구동계를 누가 얼마나 자기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느냐다.

에스비비테크는 하모닉, 즉 파동기어 감속기 국산화의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다만 아직은 초기 양산 단계라는 점을 빼면 안 된다. 일본 하모닉드라이브의 지배력이 워낙 강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에스피지는 정밀 감속기와 기어드모터를 바탕으로 로봇용 확장을 노리지만, 현재는 로봇 비중이 낮고 기어드모터가 주력이다. 로보티즈는 모터와 감속기, 제어를 한 몸에 묶은 다이나믹셀 스마트 액추에이터로 존재감이 뚜렷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 등에 공급한 이력은 괜히 붙는 수식이 아니다. 하이젠알앤엠은 산업용 서보모터와 드라이브, 감속기를 통합한 구동계로 휴머노이드 구동계 공급사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뉴로메카는 협동로봇 인디를 만들면서 2025년 구동계, 즉 감속기·모터·드라이브 100% 내재화를 국내 최초로 내걸었다. 이건 상징이 크다. 부품을 사서 조립하는 회사를 넘어, 로봇의 힘줄과 관절을 스스로 설계하고 묶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아직 모든 기업이 같은 수준까지 온 건 아니다. 그래도 판이 바뀌는 신호는 이런 곳에서 나온다.

기업주력
에스비비테크하모닉(파동기어) 감속기 국산화 대표 — 로봇 관절용, 아직 초기 양산(日 하모닉드라이브가 세계 지배)
에스피지(SPG)정밀 감속기·기어드모터 — 로봇용 확장 중(현재 로봇 비중은 낮고 기어드모터가 주력)
로보티즈다이나믹셀(모터+감속기+제어 일체형) 스마트 액추에이터 —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공급
하이젠알앤엠산업용 서보모터+드라이브+감속기 통합 구동계 — 휴머노이드 구동계 공급사로 부상
뉴로메카협동로봇 인디(Indy) + 2025년 구동계(감속기·모터·드라이브) 100% 내재화 국내 최초

모션제어·직선운동 — 로봇을 정밀하게 움직이다 (4개사)

감속기와 모터가 관절이라면, 모션제어와 직선운동 부품은 로봇의 자세와 궤적을 다듬는 신경계에 가깝다. 잘 도는 것과 정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공장 자동화와 로봇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이 영역의 힘이 더 세진다. 로봇 산업의 깊이는 팔을 몇 대 팔았느냐보다 모션제어와 직선운동 부품을 얼마나 자기 생태계 안에 묶었느냐에서 드러난다.

알에스오토메이션은 로봇 모션제어기 MMC, 서보드라이브, 엔코더를 갖춘 풀스택 구성이 강점이고 로크웰오토메이션 공급 이력도 있다. 이 조합은 단순 부품회사가 아니라 제어 아키텍처를 다루는 회사라는 뜻에 가깝다. 삼익THK는 LM가이드와 볼스크류 등 직선운동 부품에서 존재감이 확실하다. 일본 THK의 기술도입과 합작의 역사 위에 서 있지만, 지배는 국내 삼익이라는 점도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다. 파스텍은 비상장이지만 스텝모터, 서보드라이브 Ezi-SERVO, 모션제어에서 클로즈드루프 전문성을 쌓아온 회사다. 케이엔알시스템은 유압 액추에이터와 유압 핵심부품, 구조·내구 시험 시뮬레이터를 함께 가져가며 보스턴다이내믹스 납품 이력이 있다. 전기식 구동이 대세라 해도 모든 로봇과 시험 환경이 전동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누가 실제 하중과 내구를 버티게 만드느냐,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기업주력
알에스오토메이션로봇 모션제어기(MMC)·서보드라이브·엔코더 풀스택 — 로크웰오토메이션 공급
삼익THKLM가이드·볼스크류 등 직선운동(LM) 부품 — 日 THK 기술도입·합작(지배는 국내 삼익)
파스텍스텝모터·서보드라이브(Ezi-SERVO)·모션제어 — 클로즈드루프 전문(비상장)
케이엔알시스템유압 액추에이터·유압 핵심부품 + 구조·내구 시험 시뮬레이터 — 보스턴다이내믹스 납품

센서·비전 — 로봇의 눈 (2개사)

로봇이 아무리 좋은 관절과 구동계를 가져도 보지 못하면 멈칫한다. 센서와 비전은 로봇의 눈이자, 작업 신뢰도를 좌우하는 마지막 판단 장치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는 잘 본다는 말이 곧 불량을 줄이고 사이클타임을 줄인다는 뜻이다. 로봇의 지능이 화려하게 포장될수록 실제 돈은 결국 현장에서 물체와 공간을 정확히 읽는 센서·비전 기술로 수렴한다.

라온피플은 AI 머신비전 검사 NAVI AI를 앞세워 2차전지, 반도체, 철강 스마트팩토리 영역에서 존재감을 쌓고 있다. 휴머노이드처럼 사람 닮은 외형은 없어도, 공장에서는 이런 비전이 로봇의 실질 생산성을 만든다. 나무가는 3D ToF 뎁스센싱 카메라모듈을 만들고 삼성 로봇청소기용 3D 모듈을 양산했다. 로봇이 공간을 입체적으로 인식하는 기술은 이제 청소로봇에만 머물 문제가 아니다. 협동로봇이든 서비스로봇이든, 앞으로 더 많은 기체가 깊이 정보를 필요로 할 텐데 그때 중요한 건 누가 이미 양산 경험을 갖고 있느냐다.

기업주력
라온피플AI 머신비전 검사(NAVI AI) — 2차전지·반도체·철강 스마트팩토리
나무가3D ToF 뎁스센싱 카메라모듈 — 삼성 로봇청소기 3D 모듈 양산

협동·산업·이송 로봇 — 부품을 꿰는 완성체 (3개사)

완성로봇 기업은 부품 기업의 성과를 가장 먼저 시장에 번역하는 곳이다. 그래서 협동로봇, 휴머노이드, 반송로봇 업체를 보면 부품 국산화의 속도와 방향도 함께 읽힌다. 겉으로는 완성체 경쟁 같지만, 속을 뜯어보면 결국 어떤 부품 생태계를 등에 업고 있느냐의 경쟁이다. 완성로봇 기업의 진짜 실력은 기체 디자인보다 어떤 핵심부품을 안정적으로 엮어 시장에 낼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협동로봇, 양팔로봇, 휴머노이드를 아우르며 삼성전자가 최대주주가 됐고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 변화는 단순 지분 뉴스가 아니라, 앞으로 국내 로봇 부품 조달과 개발 속도에 영향을 줄 사건으로 봐야 한다. 티로보틱스는 반도체와 OLED용 진공 반송로봇, 이송모듈에서 강하고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공급 이력이 있다. 화려한 휴머노이드와는 결이 달라도, 실제 산업 현장에선 이런 이송과 반송 기술이 더 큰 매출을 만든다. 유일로보틱스는 산업용 다관절 로봇과 협동로봇, 사출자동화 시스템을 함께 가져간다. 결국 로봇은 단품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팔린다. 그래서 완성체 기업을 볼 때도 팔의 자유도보다 어떤 부품과 자동화 문법을 자기 식으로 묶는지부터 봐야 한다.

기업주력
레인보우로보틱스협동로봇·양팔로봇·휴머노이드 — 삼성전자 최대주주(~35%, 자회사 편입)
티로보틱스반도체·OLED 진공 반송로봇·이송모듈 —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공급
유일로보틱스산업용 다관절·협동로봇 + 사출자동화 시스템

앞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

앞으로 휴머노이드 투자가 커질수록 국내 부품 국산화 시계도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삼성의 레인보우로보틱스 편입, 현대의 보스턴다이내믹스 투자 같은 흐름은 결국 기체만 보지 않는다. 그 안에 들어갈 관절, 액추에이터, 모터, 드라이브, 센서까지 같이 본다. 휴머노이드 한 대를 제대로 만들려면 부품 수급 안정성과 성능 검증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 조건이야말로 국내 공급망을 키우는 가장 현실적인 압력이다. 완성로봇의 꿈이 커질수록 부품회사의 시간이 온다는 말, 이제는 꽤 설득력이 있다.

다만 들뜰 필요는 없다. 에스비비테크의 하모닉 감속기 국산화도 아직 초기 양산 단계이고, 에스피지 역시 현재는 기어드모터 주력이 더 분명하다. 국산화가 곧바로 글로벌 대체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뉴로메카의 2025년 구동계 100% 내재화 같은 장면은 분명 이전과 다른 이정표다. 누가 휴머노이드를 가장 사람처럼 걷게 만드느냐보다, 누가 감속기와 구동계를 안정적으로 양산해 여러 로봇에 깔아 넣느냐가 더 큰 사업이 될 수도 있다. 정말 돈이 되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저는 여전히 완성로봇의 외형보다 그 안에서 조용히 돌고 있는 부품을 먼저 보게 된다.

※ 본 글은 공개 자료를 웹 검증해 사명·주력사업·시장지위를 정리한 것이며, 일부 평가는 필자 견해입니다. 투자 판단의 직접 근거가 아닙니다.

작성: 2026. 7. 이알렉산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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