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기업-4] 아무도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있는 채로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는다.
어느 동네를 가든, 휴대폰 대리점 세 개는 꼭 멀지 않은 거리에 나란히 서 있다. 빨간 간판 하나, 그 옆에 다른 색 간판 하나, 조금 떨어져 또 하나. 색깔만 다를 뿐, 안에서 파는 것은 거의 같다. 요금제도 신기할 만큼 서로 닮았다. 어느 집이 조금 올리면 나머지 두 집도 슬그머니 따라 올리고, 어느 집이 새 요금제를 내놓으면 몇 주 안에 비슷한 것이 두 개 더 생긴다. 짜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묻고 싶어 지지만, 대놓고 짜면 그건 불법이다. 짜지 않으면서도 짠 것처럼 움직이는 것. 그게 이 세 회사가 오랫동안 해 온 일이다.
지난 세 번의 이야기에서 나는 한 회사가 홀로 차지한 벽에 관해 썼다. 오늘의 벽은 조금 다르다. 이 벽은 한 회사가 아니라 세 회사가, 서로를 마주 본 채 함께 세운 벽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걸 과점이라고 부른다. 몇몇이 시장을 나눠 갖고, 그 나눔의 경계를 굳이 건드리지 않는 상태. SK텔레콤과 KT, 그리고 LG유플러스. 우리가 매달 요금을 내는 이동통신 세 회사의 이야기다.
오래된 삼각형과 그 벽 안의 세입
이 세 회사가 시장을 나눠 가진 비율은 오랫동안 대략 4 대 2.5 대 2였다. SK텔레콤이 다섯 중 둘, KT가 넷 중 하나, LG유플러스가 다섯 중 하나. 이 비율은 놀랄 만큼 오래 변하지 않았다. 시장이 이렇게까지 미동도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새로 들어올 수가 없다. 전국에 기지국을 깔고 주파수를 사들이는 데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제4의 이동통신사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지난 수 십년간 몇 번이나 있었지만, 번번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다. 벽이 너무 높아서, 넷째는 아예 태어나지 못했다. 대신 벽 안에 세 들어 사는 이들이 생겼다. 알뜰폰이다. 세 회사의 망을 빌려 쓰는 이 세입자들이 어느새 시장의 6분의 1을 차지했지만, 자기 망이 없으니 벽을 넘은 것은 아니다. 집주인 셋의 구도는 그대로다.
둘째, 안에 있는 우리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통신사를 바꾸는 일은 어쩐지 번거롭다. 약정이 걸려 있고, 위약금이 있고, 번호를 옮기는 절차가 귀찮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같은 회사에 머문다. 나만 해도 그렇다.
| 회사 | 매출 | 영업이익 | 2025년 한 줄 |
|---|---|---|---|
| SK텔레콤 | 17조 992억원 | 1조 732억원 | 해킹 사태로 40% 선 붕괴 |
| KT | 28조 2,442억원 | 2조 4,691억원 | 비통신·부동산으로 매출 1위 |
| LG유플러스 | 15조 4,517억원 | 8,921억원 | 조용한 동반 성장 |
| 3사 합산 | 약 60조 8억원 | 약 4조 4천억원 | — |
※ 2025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2025년, 세 회사의 매출을 합치면 60조 원이 넘는다. 흥미로운 건 매출 1위가 SK텔레콤이 아니라 KT라는 점이다. 28조 원. 하지만 이건 이동통신에서 벌어들인 돈이 아니다. KT는 유선전화와 인터넷, 부동산, 심지어 카드 사업까지 거느린 회사여서, 그 덩치는 상당 부분 통신 너머에서 나온다. 영업이익이 한 해 만에 세 배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절반은 강북 사옥 부지를 개발해 판 부동산 이익이고, 나머지 절반은 전해에 대규모 퇴직 비용을 미리 털어낸 덕이다. 순수하게 손안의 휴대폰 시장만 놓고 보면, 여전히 맨 앞에 선 것은 SK텔레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025년 봄까지는 그랬다.
균형이 흔들린 해
2025년 4월, SK텔레콤 가입자들의 유심 정보가 해킹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통신 회사에게 이보다 치명적인 종류의 사고는 드물다. 사람들이 통신사에 맡기는 것은 결국 신뢰 하나인데, 그 신뢰의 한복판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정부는 조사 끝에 이 사고를 회사의 잘못으로 규정했고, 그동안 사람들을 붙잡아 두던 족쇄, 그러니까 위약금을 면제하라고 했다. SK텔레콤은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서 앞서 말한 두 번째 이유가 뒤집힌다. 사람들이 통신사를 잘 바꾸지 않던 것은, 많은 경우 바꾸기가 번거롭고 위약금이 무서워서였다. 그런데 그 위약금이 사라지자 잠겨 있던 문이 잠깐 열렸고, 사람들이 그 문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사고가 알려진 날부터 위약금 면제가 끝난 7월 중순까지, SK텔레콤을 떠난 사람은 83만명. 들어온 사람을 빼고도 60만명이 순수하게 줄었다. 2015년에 50%를 내준 뒤로 십 년간 한 번도 깨지지 않던 40%의 점유율이, 그해 5월 처음으로 밑으로 꺼졌다.
떠난 사람들은 증발한 것이 아니다. 옆집 두 곳으로, 그리고 벽 안의 세입자인 알뜰폰으로 걸어 들어갔다. KT와 LG유플러스는 딱히 대단한 걸 하지 않았다. 그저 문이 열려 있는 동안 그 앞에 서 있었을 뿐이다. 과점이라는 삼각형은 그런 구조다. 한 꼭짓점이 흔들리면, 그 무게는 사라지지 않고 나머지 꼭짓점으로 옮겨 간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후일담이 있다. 그해 가을, 이번에는 KT에서 사고가 터졌다. 고객들 몰래 소액결제가 빠져나가고 개인정보가 새어 나간 것이다. 정부 조사가 끝나자 KT에도 같은 처방이 내려졌다. 위약금 면제. 문이 다시 열렸고, 이번에는 KT의 가입자들이 하루 몇 만명씩 짐을 쌌다. 그리고 그 문 앞에는, 일 년 전 자기 문이 열렸던 SK텔레콤이 공짜 단말기를 들고 서 있었다. 지난해 나간 고객이 돌아오면 가입 연수까지 되돌려주겠다면서. 과실을 줍던 자가 과실을 떨구는 자가 되고, 떨구던 자가 다시 줍는 자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일 년이 채 안 됐다. LG유플러스마저 해킹 은폐 정황으로 수사를 받고 있으니, 삼각형의 세 꼭짓점이 돌아가며 한 번씩 흔들리는 셈이다. 균형은 유지된다. 다만 그것은 아무도 흔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두가 번갈아 흔들려서다.
신뢰를 되사는 값
무너진 신뢰는 어떻게 되사는가. 2025년 이후 세 회사가 한 일을 보면, 그 가격표가 어렴풋이 보인다.
SK텔레콤이 치른 값이 가장 비쌌다. 전 가입자에게 한 달 요금의 절반을 깎아 주고 데이터를 얹어 주는 감사 패키지를 돌렸는데, 그 비용이 실적을 그대로 관통했다. 패키지가 반영된 3분기 영업이익은 484억 원. 분기에 수천억씩 벌던 회사의 성적표라고는 믿기 어려운 숫자다. 말하자면 이 회사는 한 해치 이익의 상당 부분을 헐어서 신뢰를 도로 사들인 것이다. 그 위에 5년간 7천억 원의 보안 투자를 약속했고, 보안 책임자를 사장 직속으로 올렸고, 자사의 보안 체계를 정리한 백서까지 만들어 공개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이 반성문을 책으로 묶어 낸 격이다.
그러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KT가 곧바로 1조 원을 발표한 것이다. 5년간 보안에 1조. SK텔레콤보다 정확히 3천억 많은 숫자였다. 회사는 경쟁사 발표와 무관하게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라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요금제가 그랬듯이. 어느 집이 숫자를 내놓으면, 옆집이 조금 더 큰 숫자를 내놓는다. 이 세 회사는 요금으로는 절대 경쟁하지 않지만, 경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전선이 옮겨 다닐 뿐이다. 한때는 보조금이었고, 한때는 멤버십이었고, 지금은 보안 투자액이다. 신뢰라는, 원래는 값을 매기지 않고 딸려 오던 것이, 이제 조 단위의 가격표를 달고 진열대에 올랐다.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SK텔레콤의 점유율은 여덟 달 만에 하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고, 올해 이익은 예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더 얄궂은 것은 주가다. 이익이 41% 빠진 성적표를 내놓던 무렵, 이 회사의 주가는 역대 최고가를 찍고 있었다. 시장은 사고의 값을 이미 다 치렀다고 보고, 회복을 미리 사들인 것이다. 시장이란 원래 반성보다 회복에 값을 쳐주는 곳이니까.
벽 안에서 다들 옆방을 짓는다
그렇다면 이 세 회사는 앞으로도 계속 이 삼각형 안에서 편안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통신이라는 본체 자체가, 실은 더 자라지 않는 집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안 쓰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 카카오톡이 그랬듯, 이동통신도 새로 데려올 손님이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요금은 정치와 여론이 늘 지켜보는 품목이라, 마음대로 올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세 회사는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AI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셋은 각자 다른 손님과 짝을 지었다. SK텔레콤의 명함첩이 가장 두껍다. 아마존과 손잡고 울산에 7조 원짜리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고, 챗GPT를 만든 오픈AI와는 서남권에 전용 데이터센터를 짓자는 양해각서를 맺었다. 클로드를 만드는 앤스로픽에는 일찌감치 지분을 넣고 협력 관계를 텄고, AI 검색을 하는 퍼플렉시티와도 손을 잡았다. 그룹 차원에서는 15기가와트라는, 원전 십여 기 분량의 인프라 구상까지 내놨다. KT는 여러 손님 대신 한 명의 큰손과 오래 계약했다. 마이크로소프트다. 5년간 2조 4천억 원을 걸고 한국형 AI 모델과 클라우드를 함께 만들기로 했고, 미국 정보기관의 데이터 분석을 해 온 팔란티어와는 금융권 데이터 사업을 도모한다. LG유플러스는 멀리 가지 않았다. 구글과 홈 서비스를 협력하되, 모델은 한 지붕 아래 LG의 엑사원을 쓰고, 남의 데이터센터를 지어 주고 운영해 주는 실속형 장사를 키운다. 통신사가 AI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조금 정직하지 못하다. 세 회사의 장부에서 AI가 차지하는 몫은 아직 100원 중 3원 남짓이다. 나머지 97원은 여전히 우리가 매달 내는 요금이다. 그리고 저 화려한 명함첩을 다시 들여다보면, 관계의 방향이 보인다. AI를 만드는 쪽은 오픈AI와 앤스로픽과 구글이다. 우리 통신사들이 하는 일은 그들이 쓸 방을 짓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란 결국 전기가 잘 들어오는 땅에 건물을 짓고, 그 안의 자리와 전력과 냉각을 세놓는 장사다. 울산에 짓는 이유도 옆에 가스발전소가 있어서 이다. 요컨대 이것은 동업 이라기보단,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세입자를 모시려는 건물주들의 경쟁에 가깝다.
다만 이것을 눈속임이라고 부르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이 회사들은 처음부터 이 장사를 해 왔다. 전국에 땅이 있고, 발전소급 전력 계약이 있고, 망이 있고,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현금이 있다. 기지국을 세우고 회선을 깔아 사용료를 받던 회사가, 이제 서버실을 세우고 전력을 깔아 사용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장사의 본질이 바뀌는 게 아니라, 세입자가 바뀌는 것이다.
사람에서, AI로. 그러니 벽 안의 세 회사가 짓는 옆방은 사실 새 장사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장사의 연장이다. 잘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의 수요를 담보로 빚을 내어 짓는 건물들이니, AI의 식욕이 예상을 밑돌면 이 서버실들은 통신판 미분양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남는다. 그 거대한 건물들이 먹을 전기는, 이 연재의 첫 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그 회사에서 사 와야 한다. 산업용 전기가 중국보다 비싸진 나라에서, 전기 먹는 하마를 수십 마리 들이겠다는 계획. 첫 번째 벽과 네 번째 벽은 그렇게 한 전선으로 이어져 있다.
하늘에서 오는 것
그런데 요즘, 이 벽에는 옆이 아니라 하늘에서 다가오는 것이 있다.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다. 지난겨울 한국에 상륙한 이 위성 인터넷은 아직 비싸다. 월 8만 7천 원에, 안테나 값만 55만 원. 월 몇 만원에 기가 인터넷이 나오는 아파트의 나라에서 설 자리가 좁고, 애초에 도시의 하늘은 위성이 감당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다. 위성 하나가 한 동네에 나눠 줄 수 있는 용량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어서, 이 물건의 경제학은 사람이 듬성듬성한 곳에서만 작동한다. 그래서 지금 스타링크가 파고드는 곳도 바다와 하늘이다. 원양어선의 선원들이 이제 태평양 한가운데서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항공사들은 기내 와이파이 간판을 갈아 달고 있다.
우습게 볼 물건은 아니다. 최근 상장을 준비하며 처음 공개된 스페이스X의 장부를 보면, 이 회사에서 돈을 버는 사업은 로켓이 아니다. 로켓도, AI도 적자다. 흑자는 오직 스타링크. 매출의 7할을 홀로 벌어들이며, 화성에 가겠다는 적자 투성이 꿈을 혼자 먹여 살리는 지갑이다. 세계 164개국, 가입자 천만 명. 그리고 이 지갑은 이제 막 두 번째 칸을 열려는 참이다.
그 두 번째 칸이 ‘다이렉트투셀’이다. 위성을 5백 킬로미터 상공에 세운 기지국으로 만드는 기술. 접시도, 새 휴대폰도 필요 없다. 주머니 속의 평범한 폰이 하늘과 직접 교신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곡예에 가까운 일이다. 폰의 손가락만 한 안테나가 내는 미약한 신호를 우주에서 받아내야 하니, 위성에는 버스만 한 안테나가 달린다. 위성은 총알보다 몇 배 빠르게 나는데, 그렇게 빠른 것이 내는 전파는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 음이 달라지는 구급차 사이렌처럼 주파수가 밀린다. 그래서 위성은 매 순간 그 밀림을 미리 계산해서, 어긋날 만큼을 반대로 틀어 쏜다. 움직이는 배 위에서 과녁이 아니라 과녁이 있게 될 자리를 쏘는 포수처럼. 이 모든 곡예 덕분에, 폰은 자기가 우주와 이야기하는 줄도 모른다. 그저 유난히 높은 곳에 서 있는 기지국 하나와 통화하는 줄 안다. 태평양 건너에서는 이미 산속의 조난자가 이 방식으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직은 문자 뿐이고, 영상을 볼 대역은 어림도 없다. 하지만 통신의 역사란 언제나 “아직은”이 무너져 온 역사다.
이 기술이 무르익는 날, “전국 어디서나 터진다”는 세 회사의 오래된 자부심은 프리미엄이 아니라 기본값이 된다. 시장을 빼앗지 않고도, 요금을 받쳐 온 천장을 낮추는 것이다. 벽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벽의 의미가 옅어지는 것.
다만 이 침입자에게는 묘한 약점이 하나 있다. 위성이 폰과 대화하려면 폰이 알아듣는 주파수로 말해야 하는데, 그 주파수는 나라가 통신사들에게 나눠 준 것이다. 그래서 스타링크는 어느 나라에서든 혼자 들어올 수 없다. 벽 안의 누군가가 문을 열어 줘야 한다. 미국에서 통신사 하나와 짝을 지어 들어온 것도 그래서다. 그리고 바로 그 약점 때문에, 스타링크가 그리는 그림은 통신사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다. 통신사에게 하늘의 커버리지를 도매로 팔고, 통신사가 그걸 자기 요금제에 얹어 파는 것. 접시를 사 줄 손님은 세계에 천만 명이지만, 휴대폰은 수십억 대다. 위성들은 어차피 떠 있으니, 그 별자리에 세를 놓는 데에 드는 추가 비용은 거의 없다.
여기까지 오면 관계가 묘하게 뒤집히는 게 보인다. 이 글에서 나는 줄곧 세 통신사를 건물주로 그렸다. 알뜰폰에게 망을 세놓고, AI에게 서버실을 세놓는. 그런데 다이렉트투셀이 성사되는 날, 그 건물주들은 하늘에 세 들어 사는 처지가 된다. 임대하던 자가 임차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세 회사의 대응이 재미있어진다. 싸우는 대신, SK와 KT의 자회사들은 스타링크의 국내 판매 대리점이 되었다. 네 번째 대리점은 동네 사거리가 아니라 하늘에 있고, 그 간판을 달아 준 것은 다름 아닌 기존 세 집이다. 언젠가 자기가 세입자로 계약서를 쓰게 될지 모르는 집주인과, 일단 거래부터 트고 명함을 나눠 두는 것. 그것이 이 오래된 삼각형의 처세술이다.
같은 과점, 다른 시간표
세 회사가 나눠 가진 이 과점은, 직원들의 시간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 회사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연수 |
|---|---|---|
| SK텔레콤 | 약 1억 5,200만원 | 약 13.6년 |
| KT | 약 1억 700만원 | 약 22년 |
| LG유플러스 | 약 1억 100만원 | 약 9.7년 |
※ 2025년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연봉은 셋 다 1억 원을 넘지만, 근속은 극과 극이다. 공기업에서 출발한 KT는 평균 22년. 앞 이야기의 카카오가 5년 반이었으니 네 배다. 후발 주자 LG유플러스는 10년이 채 안 된다. 같은 삼각형 안에 있어도, 뿌리가 다르면 사람이 머무는 시간도 다르다. 오래된 벽일수록, 그 안의 사람도 오래 남는다.
이 시간표를 보다가 나는 드라마 속 한 인물을 떠올렸다. 서울에 자가가 있고 대기업에 다니는, 그 김부장. 소설은 그의 회사를 밝히지 않지만, 드라마에서 나온 바로는 그가 다닐 법한 회사를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바로 이 챕터에서 설명한 이런 곳이다. 경쟁이 순한 시장, 스물두 해의 평균 근속, 어김없는 1억대 연봉. 과점의 벽 안에서 직장 생활이란 파도가 아니라 호수 같은 것이어서, 큰 기회는 세대에 한 번씩 온다. 통신 세대가 바뀌는 해, 조 단위 투자의 주판을 튕기는 자리에 마침 앉아 있던 사람이 실적을 가져가고, 그 타이밍을 비껴간 나머지는 그저 안락하다. 그리고 안락은 조용히 값을 받아 간다. 들어갈 때는 다들 최고의 엘리트였다. 십 년이 지나도 스스로를 엘리트라 부를 수 있게 해 주는 환경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김부장의 계획표에는 대출이 있고, 그 대출 뒤에는 이 소득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벽 안에서는 합리적인 전제다. 벽이 서 있는 동안에는. 그는 자신이 벽에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실력으로 서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렇듯이. 시스템에 먹히고 있다는 자각은, 언제나 벽에 금이 간 다음에야 온다.
다음 이야기는 마지막 벽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벽들은 법이, 자연이, 습관이, 혹은 몇몇의 암묵적인 균형이 세운 것이었다. 마지막 벽은 다르다. 오직 기술과 원가의 힘만으로, 세계에서 단 몇 곳만이 넘을 수 있는 벽. 우리 수출의 기둥이자, 방금 말한 그 데이터센터들이 목마르게 찾는 물건을 만드는 두 회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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