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기업-1] 법이 지어준 벽 안에서 사는 법
세상에는 두 종류의 벽이 있다. 하나는 넘으려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벽이고, 다른 하나는 넘어올 사람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벽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앞쪽 벽 아래에 서 있다. 조금 더 나은 물건을 만들고, 값을 얼마쯤 낮추고, 밤늦게까지 불을 켜둔 채 그 벽을 한 뼘씩 기어오른다. 대개는 오르다가 미끄러진다. 그게 보통의 사업이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뒤쪽 벽 안에서 사는 회사가 있다. 누군가 그 회사를 위해 미리 담을 둘러쳐 두었고, 담을 쌓은 것은 다름 아닌 국가다. 벽돌도 시멘트도 쓰지 않은, 법이라는 이름의 벽.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지간한 콘크리트보다 단단한 벽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런 회사들에 마음이 끌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 담 안에서 사람들이 대체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다. 이 책은 그런 벽에 관한 이야기다. 벽은 대충 다섯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국가가 세운 벽, 자연이 세운 벽(인프라), 사람들의 습관이 세운 벽(플랫폼), 몇몇이 손잡고 세운 벽(과점), 그리고 기술과 원가가 세운 벽.
오늘은 그중 가장 노골적인 첫 번째 벽 이야기다. 법이 대놓고 경쟁을 금지해서 생긴 벽. 그 안에 사는 두 회사, 강원랜드와 KT&G.
정선에 있는 단 하나의 문
대한민국에는 카지노가 열일곱 곳 있다. 그리고 그중 열여섯 곳은, 내가 아무리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지갑을 두둑이 채워 가더라도 나를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문 앞에서 여권을 요구하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정중하게 돌아가 달라고 한다. 오직 한 곳, 강원도 정선의 강원랜드만이 내국인에게 문을 연다. 이 한 줄이 강원랜드라는 회사의 거의 전부를 설명한다.
물론 우연이 아니다. 1990년대에 석탄이 죽었다. 석탄이 죽자, 그것으로 먹고살던 마을들이 함께 조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정부는 가라앉는 마을을 붙들려고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긴 이름의 밧줄을 던졌고, 그 밧줄 끝에 강원랜드가 매달려 있었다. 오직 이 회사에게만 내국인의 출입이 허락되었다. 바꿔 말하면, 강원랜드의 경쟁자가 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 세상에 이보다 편안한 잠자리가 또 있을까. 게다가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종류의 잠자리다.
2025년의 성적표를 펼쳐 보면, 이 편안한 잠자리의 온기와 그 밑으로 스며드는 한기가 동시에 만져진다.
| 구분 | 실적 | 전년 대비 |
|---|---|---|
| 매출 | 약 1조 4,767억원 | +3.5% (사상 최대) |
| 영업이익 | 약 2,352억원 | -17.7% |
| 당기순이익 | 약 3,165억원 | -30.7% |
※ 2025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강원랜드 한 곳이 벌어들인 돈이, 외국인만 받는 나머지 열여섯 곳을 전부 합친 것과 엇비슷하다. 2025년 5월부터는 테이블 한 판에 걸 수 있는 돈의 상한을 3,000만 원까지 올렸고, 덕분에 매출은 사상 최대를 찍었다. 여기까지는 교과서에 실릴 법한 독점의 풍경이다. 벽 안은 따뜻하고, 손님은 알아서 찾아온다. 아무것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 아래 문장에 있다. 매출은 사상 최대인데 영업이익은 두 자릿수로 줄었다. 사람 쓰는 값이 올랐고, 스무 해 넘게 굴러온 건물이 여기저기서 슬그머니 손을 벌렸다. 손님을 독점한다고 해서 비용까지 독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돈을 어디서 벌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회사가, 번 돈을 어떻게 남길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이쪽이 훨씬 더 까다로운 고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벽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지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유효기간이다. 특별법이 허락한 내국인 출입은 2045년 12월 31일에 끝나도록 되어 있다. 법이 세워 준 벽은 법이 도로 허물 수도 있다. 강원랜드가 요즘 외국인 전용 구역을 넓히고 1,796억 원을 들여 두 번째 영업장을 짓는 것을, 나는 20년 뒤를 향한 조용한 몸부림으로 읽는다. 벽이 사라진 다음 날 아침에도 문을 열어 두려면,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다만 궁금하다. 2045년을 준비하는 일에, 지금 그 회사의 리더들이 얼마나 마음을 쓰고 있을까.
담배를 둘러싼 오래된 이야기
KT&G의 벽은 강원랜드의 것보다 훨씬 오래됐다.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조선 후기의 담배 전매에까지 닿는다. 국가가 담배를 직접 만들어 직접 팔던 시절이 있었고, 그 조직은 전매청이 되었다가,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되었다가, 지금의 KT&G가 되었다. 이름은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국가가 물려준 자리만은 크게 흔들리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 오래된 이야기는 대개 그런 식으로 살아남는다. 주인공의 얼굴만 조금씩 바꿔 가면서.
2015년, 오래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말보로와 아이코스를 든 필립모리스가 들어왔고, 던힐의 BAT로스만스가 그 뒤를 따랐다. 보통 이런 순간에 토종 독점은 휘청인다. 벽 안의 따뜻함에 익숙해진 몸은 바깥바람에 약한 법이니까. 그런데 KT&G는 휘청이지 않았다. 이건 조금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 지표 | 수치 | 덧붙이는 말 |
|---|---|---|
| 연결 매출 | 약 6조 5,796억원 | 처음으로 6조를 넘겼다 (+11.4%) |
| 영업이익 | 약 1조 3,496억원 | 사상 최대 (+13.5%) |
| 국내 궐련 점유율 | 약 68% | 문이 열린 지 10년 뒤에도 셋 중 둘 |
| 전자담배 ‘릴’ 점유율 | 약 46% | 아이코스(약 45%)를 제치고 1위 |
※ 2025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여기서 KT&G는 강원랜드와 다른 길로 접어든다. 강원랜드의 벽은 순수하게 법으로만 지어졌다. 반면 KT&G는 법이 그어 준 출발선 위에서, 한 번 더 자기 손으로 벽을 덧쌓았다. 개방 초기 아이코스에게 내주었던 궐련형 전자담배 1위 자리를, 릴이라는 자기 브랜드로 밀어붙여 되찾아 왔고, 벌써 5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가가 지어 준 벽을, 제품으로 지키는 벽으로 조용히 갈아탄 셈이다. 물려받은 집을, 자기 돈을 치러 한 번 더 사들인 사람처럼.
그렇다면 KT&G에게는 근심이 없을까. 있다. 다만 그 근심은 경쟁사 쪽에서 오지 않는다. 시장 그 자체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줄어들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해마다 조금씩 줄고, 담배라는 물건은 세금을 올리고 싶어질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표적이다. 그래서 KT&G는 이미 오래전부터 바다 건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2025년 기준 해외에서 버는 돈이 국내를 넘어섰고(54%),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것도 국내가 아니라 해외 궐련이었다. 정관장 같은 건강기능식품을 좀처럼 놓지 않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자기가 지배하는 시장이 늙어 갈 때, 지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하나뿐이다. 아직 젊은 다른 시장을 찾아 조용히 떠나는 것.
벽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도박과 담배. 얼핏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두 사업이지만, 두 회사는 신기하리만치 같은 문법으로 쓰여 있다.
첫째, 그들의 벽은 기술도 브랜드도 아닌 법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가장 단단하면서 동시에 가장 허무하다. 콘크리트는 부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법은 한 줄만 고쳐 쓰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다. 강원랜드의 2045년이란,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누군가 벽에 적어 둔 작은 메모 같은 것이다.
둘째, 그들은 현금은 두둑하지만 그 돈이 갈 곳은 마땅치 않다. 방의 크기가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 아무리 애를 써도 방 자체를 넓힐 수는 없다. 그래서 배당은 후하고, 주가 이야기는 어딘가 나른하다. 두 회사가 나란히 복합리조트로, 바다 건너로, 담배 아닌 무언가로 눈을 돌리는 것은 그 나른함에서 벗어나 보려는 몸짓이다.
셋째, 그들은 늘 조금씩 미안해하며 산다. 도박과 담배는 세상이 대놓고 곱게 봐 주지 않는 사업이다. 벽 안에서 거둬들이는 이익 뒤에는 언제나 규제와 여론이라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생각해 보자, 누가 이런 독이 든 성배를 마시고자 하겠는가? KT&G의 경우 민영화를 거치며 지배주주가 없는 형태가 되었는데, 그 구조가 결과적으로 방패가 되었다. 소유가 여러 주체로 흩어져 있으니 누구를 겨냥해 뭐라고 하기가 애매해진다. 이런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자리다.
결국 이런 회사를 바라볼 때 내가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하나로 모인다. 벽이 사라진 다음 날에도, 이 회사는 여느 때처럼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강원랜드는 리조트에서, KT&G는 바다 건너와 홍삼에서 저마다의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안정된 배당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 두 회사는 그리 나쁘지 않은 이웃이다. 다만 그 배당이 유효기간 있는 벽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은, 창밖 어딘가에 조용히 적어 두는 편이 좋겠다.
18년이라는 시간표
서문에서 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건드리지 않을 안전한 자리를 원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이런 회사의 울타리 안은 실제로 얼마나 안전할까. 그것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 주는 숫자가 하나 있다. 직원들이 그 안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 곧 평균 근속연수다.
| 회사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연수 |
|---|---|---|
| 강원랜드 | 약 8,150만원 | 약 15.8년 |
| KT&G | 약 1억 700만원 | 약 18년 |
※ 2025년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두 회사 모두 평균 근속이 15년을 훌쩍 넘고, KT&G는 18년에 이른다. 요즘 세상에 한 회사에서 18년이라는 것은 거의 반평생을 한 지붕 아래 보낸다는 뜻이다. 쉰만 넘으면 조용히 밀려나는 보통의 회사원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시간표다. 연봉도 낮지 않다. KT&G의 평균 연봉은 1억 원을 넘어 제조·화학 업계 평균보다 높고, 강원랜드도 8천만 원대다.
경쟁자가 없는 벽은, 그 안의 사람들에게도 벽으로 작동한다. 밖에서 잘 들어오지 못하는 만큼, 안에서도 굳이 나가지 않는다. 서문에서 말한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오래된 소망이, 여기서는 15년·18년이라는 숫자로 조용히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안정의 대가로 무엇을 내주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
다음 이야기는 자연이 세운 벽에 관한 것이다. 한국전력공사는 누가 봐도 완벽에 가까운 독점인데, 어째서 수십조 원의 적자를 냈을까. 벽 안에 있으면서도 돈을 벌지 못하는, 조금 이상한 회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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