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간주] 문이 열려 있는 벽
‘국내 유일 생산’이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독점을 떠올린다. 이 나라에서 이걸 만드는 회사가 하나뿐이라면, 그 회사가 값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을 거라고. 대체로 맞는 직관이다. 하지만 늘 맞지는 않는다. 그 예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독점이라는 것이 실은 점유율의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무엇의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우리는 진짜 벽들만 봐 왔다. 오늘은 잠깐 다른 것을 보려 한다. 벽처럼 보이지만, 실은 벽이 아닌 것. 한국알콜이라는, 조금 낯선 이름의 회사가 그 좋은 예다.
100%인데 독점이 아니다
한국알콜산업은 공업용 에탄올과 초산에틸, 초산부틸을 국내에서 사실상 혼자 만드는 회사다. 이름은 낯설지만 쓰임은 가깝다. 초산에틸과 초산부틸은 페인트와 도료, 잉크에 들어가는 용제다. 벽에 페인트를 칠할 때 나는 그 특유의 냄새 뒤에, 이 회사가 있다. 국내 생산만 놓고 따지면 점유율은 100%에 가깝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독점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국알콜은 값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한다. 이유는 이 제품들의 성질에 있다. 초산에틸은 어느 회사가 만들든 똑같은 초산에틸이다. 화학식이 같고, 품질이 같고, 브랜드도 의미가 없다. 이런 범용 화학제품에는 ‘더 나은 우리 것’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값만이 경쟁의 전부다. 그리고 값으로만 겨루는 시장에서는, 국경이 별 의미가 없다. 한국알콜이 국내에서 값을 조금이라도 올리면, 그 순간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만든 똑같은 용제가 배를 타고 들어온다. 그러니 값의 천장은 한국알콜이 아니라, 저 바깥의 국제 시세가 정한다.
값의 천장은 국경 밖에 있다
여기서 진짜 독점과 겉보기 독점의 차이가 선명해진다. 앞서 만난 강원랜드나 KT&G는 값을 스스로 불렀다. 손님이 달리 갈 데가 없으니, 값은 내가 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한국알콜은 국내 유일 생산자이면서도 국제 시세와 수입 가격에 늘 끌려다닌다. 겉으로는 완벽한 벽인데, 그 벽에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언제든 값싼 수입품이 걸어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점유율 100%가 무색하게, 이 회사의 가격 결정권은 0에 가깝다.
실제로 한국알콜 매출의 절반이 훌쩍 넘는 64%가 이 용제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회사 몸통의 대부분이, 스스로 값을 못 정하는 사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실적은 해마다 국제 유가와 원료값, 환율에 따라 출렁인다. 잘 만드는 것과는 별개로,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변수들에 이익이 좌우되는 것이다. 독점의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을 열어 보면 오히려 원자재 회사에 가깝다.
| 물어야 할 질문 | 진짜 독점 (강원랜드·KT&G) | 겉보기 독점 (한국알콜) |
|---|---|---|
| 국내 지위 | 사실상 유일 | 국내 유일 생산 (100%) |
| 값을 스스로 부를 수 있나 | 그렇다 | 아니다. 수입이 천장을 정한다 |
| 벽의 재료 | 법 · 브랜드 | 주세법 일부, 그 외 없음 (범용 화학은 차별화 불가) |
| 진짜 밥벌이 | 독점 그 자체 | 규제된 주정 유통 + 에탄올 트레이딩 |
한국알콜만의 일이 아니다
이 ‘문 열린 벽’은 한국알콜 혼자만의 사정이 아니다. ‘국내 유일 생산’이라는 간판을 달고도 값을 스스로 못 부르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다. 몇 곳만 나란히 세워 본다.
| 회사 | 국내 지위 | 값을 부르나 |
|---|---|---|
| 카프로 | 카프로락탐 국내 유일 | 못 부른다. 중국 공급과잉에 값 붕괴 |
| 무림P&P | 펄프 국내 유일 | 못 부른다. 국제 펄프 시세가 결정 |
| OCI | 폴리실리콘 국내 유일 | 못 부른다. 중국 초저가에 고사 직전 |
| 유니드 | 가성칼륨·탄산칼륨 국내 유일 | 부른다. 세계 1위라 가격 전가력 |
※ 지위 판정은 국내 생산 독점 여부, 수입품과 중국산에 대한 노출 정도, 공시된 사업 구조를 근거로 했다.
카프로는 나일론의 원료인 카프로락탐을 국내에서 혼자 만든다. 그런데 2012년 무렵부터 중국이 이 물건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국내 유일이라는 지위는 아무 방패가 되지 못했다. 값은 국경 밖에서 정해졌고, 회사는 긴 적자에 빠졌다. 문이 열린 정도가 아니라, 그 문으로 밀려든 물결에 벽이 통째로 잠긴 셈이다.
무림P&P는 종이의 원료인 펄프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들지만, 그 실적은 순전히 국제 펄프 시세가 정한다. 펄프값이 오르면 웃고 내리면 운다. 국내 유일인데, 값은 저 멀리 북유럽과 남미의 시세가 매긴다.
OCI가 홀로 만들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도 중국의 초저가 공세에 국내 생산이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가 겨우 숨을 돌렸다. 셋 다 한국알콜과 똑같은 문법이다. 국내 점유율 100%, 가격 결정권 0.
그런데 표의 맨 아랫줄은 조금 다르다. 유니드라는 회사는 가성칼륨과 탄산칼륨을 국내에서 혼자 만드는데, 여기까지는 앞의 회사들과 똑같다. 다른 것은 딱 하나, 이 회사가 그 물건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든다는 점이다. 글로벌 점유율 1위. 그래서 원료인 염화칼륨 값이 올라도 제품값에 얹을 힘이 있고, 남기는 마진도 제법 단단하다. 겉모습은 한국알콜과 똑같은 ‘국내 유일’인데, 시금석 앞에서는 정반대의 답을 내놓는다. 유니드는 값을 부를 수 있다.
숫자로도 이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회사의 몸집과 이익을 보자. 한국알콜은 생산을, 판매는 그룹의 정점인 케이씨엔에이가 맡는데, 둘을 나란히 떼어 놓으면 만드는 쪽과 파는 쪽의 크기가 각각 보인다.
| 2025년 (억원) | 매출 | 영업이익 | 당기순이익 |
|---|---|---|---|
| 한국알콜 (생산) | 4,239 | 318 | 378 |
| 케이씨엔에이 (트레이딩) | 5,874 | 94 | 93 |
| 카프로 | 246 | -211 | -324 |
| 무림P&P | 7,316 | -245 | -331 |
| OCI | 20,094 | 4 | -685 |
| 유니드 | 13,388 | 879 | 653 |
※ FY2025 기준(억원). 한국알콜은 연결(재생 자회사 퓨릿 등 포함), 케이씨엔에이는 별도(비상장), OCI는 OCI(주), 무림·유니드는 연결, 카프로는 별도. 한국알콜과 케이씨엔에이는 생산·판매를 나눠 맡은 한 그룹이며, 케이씨엔에이 매출에는 한국알콜 등 계열에서 사들여 되파는 물량이 일부 포함된다. 카프로는 중국 공급과잉에 카프로락탐 생산을 사실상 접어 매출이 급감했다.
표가 말하는 건 분명하다. 값을 못 부르는 쪽. 한국알콜과 무림, OCI, 그리고 생산을 접다시피 한 카프로는 이익이 얇거나 아예 적자로 기운다. 그 가운데 값을 부를 수 있는 유니드만 홀로 두툼한 이익을 남긴다.
그러니까 같은 간판을 달고도 어떤 회사는 문이 열린 벽 안에 갇히고, 어떤 회사는 진짜 벽을 세운다. ‘국내 유일’이라는 숫자는 그 갈림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한국알콜은 앞의 셋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어디에 기대어 서 있을까.
진짜 벽은 다른 데 있다
그렇다면 한국알콜에는 벽이 아예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 벽은 ‘국내 유일 생산’이라는 간판과는 다른 곳에 서 있다. 하나는 주정이다. 한국알콜은 소주의 원료가 되는 발효주정도 만드는데, 이 주정 시장은 조금 특별하다. 국내 아홉 개 주정 회사가 만든 주정은, 반드시 대한주정판매라는 단 하나의 회사를 거쳐서만 소주 회사로 흘러간다. 1972년에 정부가 세운 이 독점 유통 구조는 지금도 계획경제의 한 조각처럼 남아 있다. 규제가 쳐 준 이 울타리 안에서라면, 값은 시장이 아니라 제도가 지켜 준다. 또 하나는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굴리는 일, 그러니까 에탄올을 사고파는 트레이딩이다. 한국알콜의 진짜 실속은 어쩌면, 무언가를 혼자 만든다는 사실보다 이쪽에 더 가까이 있다.
세 번째 답
방금 트레이딩 이야기를 슬쩍 흘렸는데, 사실 여기서 이야기를 접을 수도 있었다. 값을 부를 수 없는 회사가 갈 수 있는 길은 원가를 깎고 또 깎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조금 쓸쓸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의 그룹을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다보면, 다른 답이 하나 더 보인다.
그룹의 맨 위에는 케이씨엔에이라는 트레이딩 회사가 있다. 한국알콜의 최대주주로 지분 33.49%를 쥔, 말하자면 그룹의 정점이다. 이 회사는 스스로를 ‘아시아 No.1 에탄올 트레이딩’이라 부른다. 허풍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계열 공장이 스스로 소화하는 물량을 바닥에 깔고 있는 트레이더는 시장에서 물량을 사고팔 때 남다른 협상력을 갖는다. 언제든 자기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수요가 있다는 것은, 급하게 팔 이유도 급하게 살 이유도 없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이 회사는 연료용 에탄올을 수출한다. 휘발유에 3에서 10%의 에탄올을 의무적으로 섞게 하는 나라가 아시아에만 열두 곳이다. 필리핀의 페트론, 베트남의 페트로베트남 같은 정유사들이 그 손님이다. 한국은 의무혼합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솔린 블렌딩용 에탄올을 들여와, 국내에서는 그대로 팔거나 정제해 공업용으로 넘기고, 국경 밖으로는 바이오 연료라는 이름으로 판다. 값을 부를 수 없던 회사는, 값이 다르게 매겨지는 곳을 찾아다니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9년, 한국알콜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던 퓨릿이라는 폐용제 재생 회사를 192억 원에 인수했다. 쓰고 버려진 유기용제를 거두어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고순도 용제로 되살리는 회사다. 남들이 쓰레기라 부르는 것에서 값을 다시 매기는 사업인 셈인데, 4년 뒤인 2023년 10월 이 회사가 코스닥에 상장할 때 청약 증거금으로 7조 8천억 원이 몰렸다. 자본잠식 회사에 건넨 192억 원이 어떤 답이었는지는, 그 숫자가 대신 말해 준다.
관계회사 이엔에프테크놀로지도 있다. 한국알콜이 지분 26%를 들고 있는 이 회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신너와 식각액을 공급하며 한 해 6,700억 원어치를 판다. 지분법으로 걸쳐 있는 회사라 한국알콜의 연결 매출에 잡히는 숫자는 아니지만, 범용 용제에서 시작한 사슬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보여 주기에는 충분하다.
요컨대 범용에서 값을 못 부르는 회사가 찾아낸 세 번째 답은 이런 것이다. 트레이딩, 그러니까 물량의 힘. 재생, 그러니까 순환. 그리고 스페셜티, 그러니까 반도체. 벽이 없으면, 사슬을 넓힌다.
만드는 쪽과 파는 쪽
그렇다면 이 벽들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조건에 있을까. 숫자로 보면 이렇다.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매출 | 1인당 영업이익 |
|---|---|---|---|---|---|
| 한국알콜 | 180명 | 7,114만원 | 10.8년 | 약 15.3억원 | 약 5,800만원 |
| 케이씨엔에이 | 57명 | 약 8,800만원* | 미공시 | 약 103억원 | 약 1억 6,000만원 |
| 무림P&P | 722명 | 8,765만원 | 16.5년 | 약 9.5억원 | 약 -5,100만원 |
| OCI | 3,360명 | 4,769만원 | 14.5년 | 약 5.3억원 | 약 950만원 |
| 유니드 | 472명 | 1억 1,573만원 | 14.4년 | 약 12.8억원 | 약 1억 1,700만원 |
※ FY2025 DART 공시 기준. 1인당 값은 별도 재무제표를 직원수로 나눈 어림값이며, 비상장사는 추정치다.
FY2025 DART(전자공시시스템,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기업 공시 사이트) 공시, 1인당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OCI는 OCI(주)로 폴리실리콘 외 화학·에너지 사업을 포함한다. 케이씨엔에이는 비상장이라 평균 연봉은 급여총액을 직원 57명으로 나눈 추정치이며, 평균 근속은 공시되지 않는다.
특히 눈길이 가는 건 한국알콜과 케이씨엔에이의 대비다. 생산을 맡은 한국알콜은 180명이 한 사람당 15억 원어치를 파는데, 판매를 맡은 케이씨엔에이는 단 57명이 한 사람당 100억이 넘는 물량을 굴린다. 같은 그룹인데도 만드는 쪽과 파는 쪽의 밀도가 이렇게 다르고, 값을 못 부르는 생산의 얇은 벌이를 트레이딩의 물량이 떠받치는 구조가 사람 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이야기에서 내가 건지고 싶은 것은 하나다. 독점을 볼 때, 점유율이라는 숫자에 너무 쉽게 속지 말자는 것. 90%든 100%든, 그 숫자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이 회사는 값을 스스로 부를 수 있는가. 부를 수 없다면, 그 벽은 아무리 높아 보여도 문이 열린 벽이다. 강원랜드가 법으로 값을 부르고 카스가 물류로 값을 지키는 동안, 한국알콜은 국내 유일 생산자이면서도 바깥 시세에 고개를 숙인다. 벽의 높이가 아니라, 그 벽에 문이 달렸는지를 봐야 한다. 겉보기 독점을 가려내는 법은, 의외로 거기서 시작된다.
벽들의 이야기가 여기서 일단락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벽 밑에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공동의 배관이 깔려 있다. 무언가 열리거나 무너지는 순간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독점들. 다음 이야기부터는 그 안 보이는 독점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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