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밸류체인은 국산화됐는데 돈 버는 구조는 아직 멀었다

수소경제를 말할 때 늘 따라붙는 의심이 있다. 말은 그럴듯한데, 정작 핵심 장비와 소재는 외산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지금은 그 질문에 예전처럼 답할 수 없다. 수소를 만드는 장비, 담는 탱크, 옮기는 운송 수단용 용기, 전기로 바꾸는 연료전지, 그 안에 들어가는 막과 개스킷까지 국내 기업 이름이 또렷하게 박혀 있다. 수소경제 밸류체인은 이제 '구호'가 아니라 생산에서 저장·운송, 연료전지 활용과 핵심 부품까지 국산 기업이 실제로 채우는 단계에 들어섰다.

다만 여기서 들뜨면 곤란하다. 국산화가 곧 산업의 자립을 뜻하지는 않는다. 발전용 연료전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적자가 이어지고, 그린수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수전해는 아직 경제성이 무겁다. 수요 역시 CHPS, 수소차 보급, 수소충전소 구축 같은 정책 드라이브에 크게 기대고 있다. 만들 수 있게 된 것과, 많이 팔아 이익을 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수소산업은 드디어 '할 수 있느냐'를 넘어 '언제 스스로 서느냐'를 묻는 구간으로 들어왔다.

생산·저장·운송 — 수소를 만들고 담다 (4개사)

생산·저장·운송 쪽을 보면 밸류체인의 뼈대가 꽤 단단하다. 제이엔케이글로벌은 수소추출기, 이른바 개질기를 국내에서 처음 국산화했고 온사이트 수소충전소까지 손댄 회사다. 지필로스는 연료전지·수전해용 전력변환장치 PCS와 100kW급 PEM 수전해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지금 당장 쓸 수소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장기적으로 그린수소의 문법에 맞는 장비를 준비하는 셈이다. 수소 생산 영역은 개질기 국산화에서 수전해 장비까지 국내 기업이 이미 포진해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저장과 운송으로 넘어가면 일진하이솔루스와 HS효성첨단소재의 존재감이 선명하다. 일진하이솔루스는 Type4 수소저장탱크의 국내 대표 기업이고, 현대차 넥쏘에 독점 공급하며 튜브트레일러도 한다. HS효성첨단소재는 TANSOME 탄소섬유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산해 수소 고압용기의 소재를 받친다. 탱크와 그 탱크를 가능하게 하는 탄소섬유가 모두 국산 축으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다만 현실은 냉정하다. 수소차와 충전 인프라 확산 속도가 정책과 보조금에 좌우되는 만큼, 저장·운송 생태계도 결국 실제 보급 대수와 충전 수요가 붙어줘야 숫자가 맞는다. 탱크를 만들 수 있는 것과 시장이 충분히 열리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기업주력
제이엔케이글로벌수소추출기(개질기) 국내 첫 국산화·온사이트 수소충전소 — 구 제이엔케이히터
지필로스연료전지·수전해용 전력변환장치(PCS) + 100kW급 PEM 수전해시스템(비상장)
일진하이솔루스Type4 수소저장탱크 국내 대표 — 현대차 넥쏘 독점 공급·튜브트레일러
HS효성첨단소재탄소섬유(TANSOME) 국내 유일 양산 — 수소 고압용기 소재(구 효성첨단소재)

연료전지 완제 — 수소를 전기로 (3개사)

연료전지 완제 분야는 한국 수소산업의 자존심에 가장 가깝다. 두산퓨얼셀은 발전용 연료전지 PAFC 국내 1위로 누적 점유율이 약 49%에 이르고, SOFC 양산도 추진 중이다. 에스퓨얼셀은 건물용 연료전지 PEMFC 국내 1위로 약 60%를 차지하고 발전용 PAFC도 한다. 범한퓨얼셀은 장보고-III 납품으로 잠수함용 연료전지를 세계 두 번째로 상용화했고, 건물용 연료전지와 수소충전소까지 사업을 잇는다. 연료전지 완제는 발전용, 건물용, 잠수함용까지 한국 기업이 각 세그먼트에서 이미 존재감을 증명한 드문 분야다.

그런데 여기서도 숫자의 그림자는 짙다. 두산퓨얼셀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말할 수 있지만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연료전지 산업은 기술 장벽이 높고 설치 실적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발주와 수요가 정책 일정에 민감하다. CHPS가 시장을 키우는 데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의무화가 곧바로 기업의 안정적 수익성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건물용도 마찬가지다. 에스퓨얼셀과 범한퓨얼셀이 차곡차곡 포지션을 쌓아도, 결국 설치 이후 유지와 확산이 자생적으로 이어져야 산업이 두꺼워진다. 지금은 강한 기술과 아직 약한 수익 구조가 함께 존재하는 구간이다.

기업주력
두산퓨얼셀발전용 연료전지(인산형 PAFC) 국내 1위(누적 ~49%) — SOFC 양산 추진(적자 지속)
에스퓨얼셀건물용 연료전지(PEMFC) 국내 1위(~60%)·발전용 PAFC — 2026 사명 에스프리즘
범한퓨얼셀잠수함용 연료전지(장보고-III 납품, 세계 2번째 상용화)·건물용·수소충전소

연료전지 핵심 소재·부품 — 스택 속의 국산화 (4개사)

진짜 의미 있는 변화는 스택 안쪽에서 더 또렷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연료전지 수분제어장치 humidifier 세계 1위이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PEM과 MEA를 동시에 생산한다. 상아프론테크는 수소차·연료전지용 강화전해질막 ePTFE를 국산화해 미국 고어의 독점을 깼다. 비나텍은 연료전지 지지체·촉매·MEA를 일괄 생산하고, 평화홀딩스는 자회사 평화오일씰·PFS를 통해 연료전지 스택 개스킷을 넥쏘와 수소버스에 전량 공급한다. 연료전지의 성능과 내구성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부품에서 국산화가 실제로 이뤄졌다는 점이 한국 수소산업의 가장 큰 진전이다.

특히 상아프론테크의 ePTFE 국산화는 상징성이 크다. 독점은 늘 산업의 약한 고리를 만든다. 그 고리를 끊어냈다는 것은 단순한 대체재 확보 이상의 의미가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humidifier 세계 1위, PEM·MEA 동시 생산도 마찬가지다. 완제품 회사가 앞에 서려면 결국 뒤에서 받치는 소재·부품 업체가 버텨줘야 한다. 평화홀딩스의 개스킷, 비나텍의 지지체·촉매·MEA 일괄 생산은 바로 그 현실을 보여준다. 수소산업의 국산화는 화려한 완제품 한두 개가 아니라, 이런 보이지 않는 부품의 층이 쌓일 때 비로소 산업이 된다.

기업주력
코오롱인더스트리연료전지 수분제어장치(humidifier) 세계 1위 + 국내 유일 PEM·MEA 동시 생산
상아프론테크수소차·연료전지용 강화전해질막(ePTFE) 국산화 — 美 고어 독점 돌파
비나텍연료전지 지지체·촉매·MEA 일괄 생산(+슈퍼커패시터 글로벌 선두)
평화홀딩스연료전지 스택 개스킷 — 넥쏘·수소버스 전량 공급(자회사 평화오일씰·PFS)

앞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

다음 판은 분명하다. 청정수소 발전의무화 CHPS가 발전용 수요를 밀고, 수소차와 수소충전소 정책이 저장·운송과 부품 생태계를 받치며, 장기적으로는 수전해 기반 그린수소가 생산 영역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제이엔케이글로벌 같은 개질기 축과 지필로스 같은 수전해·PCS 축이 함께 언급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지금의 회색수소 중심 현실과 앞으로의 청정수소 전환이 한 시장 안에서 동시에 굴러가고 있다. 정책은 이미 수소 밸류체인 전 단계를 움직이고 있지만, 다음 성장은 보조금이 아니라 경제성으로 증명돼야 한다.

여기서 가장 불편한 질문을 피하면 안 된다. 그린수소는 언제 싸질까. 연료전지는 언제 흑자로 돌아설까. 수소차와 충전소 수요는 언제 정책 없이도 굴러갈까. 지금 한국 수소산업은 기술 부족의 단계는 꽤 벗어났지만, 사업 자립의 단계에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격차를 이유로 전부 부정할 필요도 없다. 국산화는 분명히 이뤄졌고, 그 자체로 산업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다만 시장은 냉정하다. 국산화 다음 장은 판매, 수익, 반복 발주다. 그 문턱을 넘어서는 기업만 진짜 강자로 남는다.

※ 본 글은 공개 자료를 웹 검증해 사명·주력사업·시장지위를 정리한 것이며, 일부 평가는 필자 견해입니다. 투자 판단의 직접 근거가 아닙니다.

작성: 2026. 7. 이알렉산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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