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기업-8] 옷을 만들지 않는 옷 회사
어젯밤에도 나는 잠들기 전에 무신사 앱을 열었다. 딱히 살 것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엄지로 화면을 밀어 올리다가, 며칠 전 장바구니에 넣어 둔 셔츠의 값이 조금 내려간 걸 확인하고, 그대로 앱을 닫았다. 요즘 옷을 산다는 건 대개 이런 식이다. 매장도, 점원도, 망설임도 없이. 그런데 앱을 닫고 나서, 이상한 사실 두 가지가 머리에 남았다. 하나, 이 거대한 옷 회사는 정작 옷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둘, 그 옷을 실제로 만드는 회사는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데, 세계에서 손꼽히게 크다.
그러니까 이건 옷을 둘러싼 두 회사의 이야기다. 옷을 파는 자와, 옷을 만드는 자. 그리고 이 둘 중 누가 값을 부르는지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만든다’는 말에 대해 품어 온 오래된 믿음이 조금 흔들린다.
팔지만, 만들지는 않는다
무신사가 하는 일은, 옷을 만드는 수많은 브랜드와 옷을 사려는 사람들을 이어 주는 것이다. 무신사는 그 사이에 서서 자리를 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말하자면 거대한 온라인 옷 시장의 문지기다. 실제로 이 회사 매출에서 가장 큰 몫은 물건을 팔아 남긴 돈이 아니라, 입점한 브랜드에게서 받는 수수료다.
| 무신사 매출 구성 | 비중 |
|---|---|
| 수수료 (입점 브랜드에서) | 38.8% |
| 제품 (자체 브랜드·PB) | 30.8% |
| 상품 (직매입 판매) | 27.3% |
※ 2025년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이 벽의 재료는 트래픽과 데이터, 그리고 습관이다. 무신사는 원래 운동화 커뮤니티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이 옷 이야기를 나누러 모이던 곳이 조금씩 물건을 파는 곳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쌓인 방문자와 취향 데이터가 지금의 벽이 됐다. 앞서 본 카카오나 네이버가 그랬듯, 사람들이 무심코 다시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 회사의 해자다. 옷을 사려면 일단 무신사부터 켠다는 습관. 어젯밤의 나처럼, 살 것도 없으면서 켜는 습관.
이 벽은 젊은데도 벌써 압도적이다. 2025년 무신사는 매출 1조 4,679억 원, 영업이익 1,405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앱에서 오간 거래액은 5조 원에 이른다. 패션 경기가 얼어붙어 전통 강자들이 나란히 뒷걸음친 해에, 이 회사는 두 자릿수로 컸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무신사는 이제 문지기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 자체 브랜드인 무신사 스탠다드가 한 해에만 4,700억 원어치 팔렸다. 남의 옷을 중개하던 회사가, 이제 자기 옷을 직접 만들어 판다. 문지기가 성 안에 자기 가게를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지기는 통행료로 번 돈을 뜻밖의 곳에 묻었다. 서울 성수동의 땅이다. 2019년, 무신사는 성수동의 옛 자동차 정비소 부지를 220억 원에 샀다. 그 뒤로도 근처의 낡은 건물과 빈 땅을 하나씩 사들였고, 장부의 유형자산은 2018년 87억 원에서 2024년 말 3,441억 원으로 6년 사이 마흔 배가 됐다. 그 사이 성수동은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동네가 됐다. 220억 원짜리 정비소 부지는 사옥이 되어 4년 만에 895억 원의 평가 차익을 안겼고, 520억 원에 산 두 필지는 2년 만에 57억 원을 남기고 팔렸다. 온라인에서 옷을 중개하던 회사가, 어느새 성수동에서 손꼽히는 땅 주인이 된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이 재미있다. 트래픽과 데이터로 쌓은 벽은, 이론상 하루아침에 증발할 수 있다. 앱은 지워지고, 습관은 옆 앱으로 옮겨 간다. 그래서였을까. 이 젊은 회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종류의 자산으로 벽의 일부를 바꿔 두었다. 땅이다. 사람들이 무신사를 힙하다고 말하는 동안, 회사는 조용히 등기부를 쌓고 있었다. 옷을 만들지 않는 옷 회사가 고른 가장 단단한 물건이 하필 땅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 생각하게 된다.
옷을 만드는 손
이제 반대편으로 가 보자. 세아상역이라는 회사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이 회사는 하루에 옷을 250만 벌씩 만든다. 전 세계 열 개 나라, 마흔 곳 넘는 공장에서다. 250만 벌이라는 숫자를 나는 사실 잘 가늠하지 못한다. 다만 지금 입고 있는 셔츠의 안쪽 라벨을 뒤집어 보면 베트남이나 과테말라 같은 지명이 적혀 있고, 그 지명 뒤에 이런 회사가 서 있을 확률이 꽤 높다는 것 정도는 안다. 우리가 아는 자라, 언더아머, 아베크롬비 같은 브랜드의 옷 상당수가 사실은 이 한국 회사의 공장에서 꿰매어진다. 옷을 만드는 일로만 따지면, 세아상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다.
그런데 이 거대한 ‘만드는 손’에게는, 무신사가 가진 것이 없다. 값을 부를 힘이다. OEM이라 불리는 이 사업은, 브랜드가 주문한 디자인대로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일이다. 얼마에 만들지는 대체로 주문자가 정한다. 자라가 옷값을 정하지, 그 옷을 꿰맨 공장이 정하지 않는다. 세아상역은 세계 최대의 손이면서도, 자기가 만든 옷의 값은 부르지 못한다. 이건 앞으로 이 책에서 여러 번 만나게 될 풍경이다. 만드는 손은, 대체로 값을 부르지 못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세아상역을 거느린 지주회사 글로벌세아는, 옷이 아닌 다른 곳으로 자꾸 손을 뻗었다. 제지회사를 사들이고, 건설회사(쌍용건설)를 사들이고, 발전소 설비회사를 사들였다. 본업에서 값을 못 부르니, 값을 부를 수 있어 보이는 다른 사업을 계속 붙인 것이다. 그런데 그 문어발이 부메랑이 됐다.
부메랑의 궤적이 가장 선명한 것이 그 발전소 설비회사다. 2018년, 글로벌세아는 회생절차에 있던 STX중공업의 플랜트 부문을 180억 원에 사들여 세아STX엔테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 몇 해는 그럴듯했다. 그러나 코로나와 전쟁으로 원자재 값이 뛰면서 공사를 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가 됐고, 2022년 한 해에만 1,000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내며 자본이 완전히 잠식됐다. 그룹은 971억 원을 꿔 주고 1,700억 원대의 지급보증까지 서 가며 붙들었지만, 2024년 여름 회사는 결국 법원에 회생을 신청했다. 법원은 한때 살리는 값어치보다 청산하는 값어치가 크다며 절차를 폐지했고, 회사는 올해 초 다시 회생의 문을 두드려 지금은 인수자를 찾는 중이다. 꿔 준 971억 원은 장부에서 이미 전액 손실로 지워졌다. 180억 원에 산 벽이 그 몇 배의 돈을 삼킨 셈이다. 값을 부르고 싶어 산 벽이었는데, 정작 값을 물어 간 것은 벽 쪽이었다.
본업은 오히려 살아나는 중이다. 지난해 세아상역은 별도 기준으로 매출 2조 245억 원을 올려 3년 만에 2조 원대를 회복했고, 영업이익도 940억 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그 위에 얹힌 그룹이다. 빚으로 몸집을 키운 탓에 그룹 전체가 한 해 이자로만 1,581억 원을 물고, 옷을 지어 번 이익은 그 이자를 건너는 동안 거의 남지 않는다. 지금 이 그룹은 유동성에 쫓겨 애써 사들였던 제지사업을 다시 내다 파는 중이다. 옷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만드는 회사가, 정작 옷 아닌 것들 때문에 휘청이고 있다.
값은 누가 부르는가
두 회사를 나란히 놓으면, 옷이라는 물건 위에서 값의 무게 중심이 어디로 옮겨갔는지가 보인다.
| 구분 | 무신사 (파는 자) | 세아상역 (만드는 손) |
|---|---|---|
| 하는 일 | 옷을 안 만들고 중개·기획 | 하루 250만 벌 제조 (세계 최대급) |
| 값 결정권 | 가깝다 (수수료를 매김) | 없다 (주문자가 값을 정함) |
| 2025년 | 사상 최대 (영업익 1,405억) | 본업 회복 (별도 영업익 940억) — 그룹 이자가 잠식 |
| 기대는 것 | 트래픽·습관 | 공장·숙련·값싼 인건비 |
물론 무신사의 값 결정권도 완전하지는 않다. 옷을 온라인에서 파는 곳은 무신사만이 아니다. 쿠팡도, 에이블리도, 지그재그도 같은 옷을 판다. 수수료를 너무 올리면 브랜드가 옆 앱으로 옷을 옮겨 걸고, 소비자는 손가락 몇 번으로 앱을 갈아탄다. 무신사가 자체 브랜드로 제조까지 내려가는 것도, 어쩌면 이 헐거운 문들을 조금이라도 메우려는 시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방향만은 분명하다. 옷의 값을 부르는 힘은, 옷을 꿰매는 손에서 옷을 진열하고 이름 붙이는 쪽으로 넘어갔다.
사람의 시간
젊은 기업은 힙하게 일하고 나간다.
| 회사 | 직원수 | 평균 연봉 | 평균 근속 | 1인당 매출 | 1인당 영업이익 |
|---|---|---|---|---|---|
| 무신사 | 1,870명 | 7,439만원 | 2년 9개월 | 약 7.8억원 | 약 7,500만원 |
| 세아상역 | 국내 본사 718명 | 약 8,600만원 | 미공시 | 약 28억원 | 약 1.3억원 |
※ 무신사는 ㈜무신사 별도 기준 — 직원수(정규직 1,740·기간제 130)·평균급여·평균근속은 2025년 사업보고서 ‘직원 등의 현황’(2025년 말). 1인당 값은 연결 매출 1조 4,679억·영업이익 1,405억을 별도 인원으로 나눈 어림값으로, 자회사 인력이 빠져 있어 다소 후하게 계산됐을 수 있다. 세아상역은 비상장이라 직원현황·근속연수가 공시되지 않는다. 연봉은 감사보고서의 급여·상여 총액 약 621억 원을 국내 인원 718명으로 나눈 어림값이다(해외 주재원이 포함됐을 수 있다). 1인당 값은 별도 매출 2조 245억 원·영업이익 940억 원을 같은 718명으로 나눈 것이다. 해외 생산 인력 약 5만~6만 명이 빠진 숫자라는 점은 본문에 적은 대로다.
무신사 직원의 평균 근속은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젊은 회사, 젊은 벽, 빠르게 드나드는 사람들. 앞서 본 하이트진로의 18년 근속과는 정반대이고, 카카오의 5.5년보다도 짧다. 대신 그 짧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이 굴리는 돈은 크다. 1인당 매출 7억 8천만 원 남짓, 1인당 영업이익은 7,500만 원. 한 사람이 받아 가는 연봉이 평균 7,439만 원이니, 남겨 주는 이익과 받아 가는 몫이 거의 정확히 포개지는, 팽팽한 저울이다. 평균 연봉이 1년 새 9,200만 원에서 7,400만 원대로 내려온 것도 감원이 아니라 채용이 폭증하며 생긴 희석이다. 젊은 벽은 아직 사람을 빨아들이는 중이다. 관문을 지키는 사업의 밀도가 이 정도라는 뜻이다.
세아상역은 국내 본사에 앉아 주문을 받고 원단을 사고 배로 실어 나르는 사람은 718명. 이들이 받는 평균 급여는 어림잡아 8,600만 원으로, 무신사보다 오히려 높다. 본사 인원으로 나눈 1인당 매출은 약 28억 원, 1인당 영업이익은 1억 3천만 원. 한 사람이 무신사의 세 배가 넘는 돈을 굴리는 셈이다. 다만 이 근사한 나눗셈에는 함정이 있다. 그 옷을 실제로 꿰매는 사람은 과테말라와 니카라과와 베트남의 봉제 라인에 약 5만~6만 명이 있다. 본사 한 사람 뒤에, 바다 건너 일흔 명이 넘는 손이 있는 셈이다. 28억이라는 숫자는 그 일흔 개의 손을 지운 숫자다. 무신사의 벽 안에는 데이터를 다루는 젊은 사람들이 짧게 머물고, 세아상역의 벽 안에는 옷을 실제로 짓는 사람들이 국경 너머에 촘촘히 서 있다. 같은 ‘옷 회사’라는 말이, 이렇게 다른 두 세계를 가리킨다.
옷을 한 벌도 만들지 않는 회사가 옷 시장을 쥐고, 옷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만드는 회사가 옷 아닌 것들로 휘청인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거대하고 고되지만, 값을 부르는 힘은 만드는 손이 아니라 그것을 소비자 앞에 놓는 관문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옷장 바로 옆 화장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수십 년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온 거인들이 흔들리고, 크림 한 통 직접 만들지 않는 신흥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이야기. 다음 장에서, 무너지는 성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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