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기업-7] 아침엔 빵, 저녁엔 소주

오늘 아침에도 나는 편의점에서 비닐에 싸인 빵을 하나 집었다. 무슨 빵이었는지는 벌써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는 선택이었다는 뜻이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저녁이 되면 나는 아마 어느 식당 냉장고에서 초록색 아니면 투명한 병을 꺼내게 될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하루의 양 끝에 놓인 두 번의 무심한 손짓. 그 뒤에 각각 한 회사가 서 있다. 아침의 빵에는 삼립이, 저녁의 소주에는 하이트진로가.

지난 이야기에서 나는 커피 한 잔과 참치 한 캔의 벽을 봤다. 이번에도 식탁이다. 다만 이 두 벽은 같은 상 위에 놓여 있으면서도, 서로 꽤 다른 방식으로 서 있다. 한쪽은 공장에 붙어 있고, 다른 한쪽은 사람의 오래된 손버릇에 붙어 있다. 그리고 2025년, 두 벽은 정반대의 한 해를 보냈다.

아침의 빵

겨울이 오면 편의점 온장고에 호빵이 쌓인다. 나는 그 냄새에 매료되지 않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 호빵의 회사가 삼립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구워 비닐에 싸 파는 빵, 그러니까 양산빵 시장에서 삼립의 자리는 압도적이다. 삼립호빵부터 크림빵까지, 우리가 이름을 아는 포장빵의 대부분이 이 회사와 그 계열에서 나온다. 전국에 깔린 공장과 물류, 그리고 수십 년 쌓인 브랜드. 교과서에 실릴 법한 독점이다.

이 벽은 어떻게 세워졌을까. 이야기는 광복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스물다섯 살의 허창성이 상미당이라는 빵집을 열었다. 몇 해 뒤 그는 장작 대신 무연탄을 때는 가마를 직접 만들어 연료비를 90% 줄였는데, 그 차액이 이 모든 것의 종잣돈이 됐다. 1964년에는 비닐로 포장한 크림빵을 냈다. 빵을 비닐에 싸서 판 국내 첫 회사였다. 1971년의 호빵은 한 개 20원, 보통 빵의 네 배 값이었는데도 그해 마지막 날 하루 100만 개가 출하됐다. 이듬해 정월 초하루부터 회사는 가게마다 찜통을 공짜로 돌렸다. 김이 오르는 찜통은 그 자체로 골목의 광고판이었다. 겨울마다 내가 온장고 앞에서 지는 싸움은, 그러니까 반세기가 넘은 설계다.

다만 히트작만으로 벽이 서지는 않는다. 양산 빵은 묘한 시장이다. 빵 하나에 남는 돈이 적고, 시장 전체의 크기도 대기업이 사운을 걸 만큼 크지 않다. 대신 전국 수만 개 편의점과 슈퍼에 날마다 새벽 빵을 실어 나르는 물류망이 있어야 한다. 벌이는 시시하고 청구서는 무겁다. 그러니 아무도 진심으로 덤비지 않는다. 롯데가 들어와 20% 언저리에서 멈췄고, 1970년대 삼립과 어깨를 겨루던 서울식품은 빵을 접고 뻥튀기 과자를 튀기고 있으며, 부산의 기린은 주인이 바뀌었다. 벽의 본체는 브랜드가 아니라, 소비자가 잠든 시간에 도는 이 새벽의 물류다.

그리고 이 독점을 완성한 것은, 얄궂게도 집안 이야기였다. 창업자의 장남은 삼립을 물려받았고, 차남 허영인은 샤니라는 작은 계열사를 받아 1983년 갈라져 나왔다. 차남은 공장 빵 대신 갓 구운 빵을 파는 파리바게뜨를 열었고, 그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전국의 양산빵 회사들을 하나씩 밀어냈다. 형의 삼립도 그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무리한 다각화 끝에 1997년 봄, 3억 원짜리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 외환위기가 오기 여섯 달 전의 일이다. 그리고 2002년 겨울, 동생의 회사가 법정관리에 있던 형의 회사를 901억 원에 사들였다. 2011년에는 양산빵 1위였던 샤니가 판매망과 제품 개발권을 삼립에 넘겼다. 1위와 2위가 한 판매망이 되면서 시장의 80% 가까이가 한 지붕 아래 모였다. 우리가 아는 그 압도적인 삼립은, 엄밀히 말하면 이때 완성된 것이다. 형이 세운 벽이 무너진 자리에, 동생이 더 높은 벽을 다시 쌓았다.

그런데 2025년, 이 독점 기업의 성적표는 뜻밖이었다. 매출은 3조 3천억 원대로 큰 변화가 없었는데, 영업이익이 387억 원으로 1년 만에 60% 가까이 주저앉았다. 당기순이익은 더해서, 전년보다 84%가 사라졌다. 시장을 압도적으로 쥐고도 이익이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SPC삼립실적
매출3조 3,705억원 (-1.7%)
영업이익387억원 (전년 949억, -59.2%)
당기순이익140억원 (-83.8%)

※ 2025년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이유는 벽 바깥이 아니라 벽 안에 있었다. 정확히는, 공장 안에.

2022년 가을, 계열사 SPL의 평택 제빵 공장에서 스물세살의 노동자가 소스를 섞는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025년 봄, 시화의 공장에서 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회사는 그 뒤로 안전에 큰돈을 들이기 시작했고, 사고가 날 때마다 라인을 멈췄다. 열두시간씩 맞교대로 돌리던 근무를 하루 여덟 시간 3교대로 바꾼 것도 이 무렵이다. 사람을 덜 갈아 넣는 방향으로 공장을 고쳤고, 그만큼 고정비가 늘었다. 그 늘어난 비용이 고스란히 이익을 깎았다.

여기서 나는 잠깐 손을 멈추게 된다. 이익이 반 토막 났다는 문장 뒤에, 두 사람의 죽음이 있다. 그러니 이 60%라는 숫자를 나쁜 소식으로만 읽어야 할지, 나는 사실 그동안 기업이 투자했어야 할 청구서를 한번에 받은거라고 생각한다. 이제서야 밤을 새워 빵을 굽던 공장이 사람을 덜 갈아 넣는 쪽으로 돈을 쓰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벽은 그대로 높은데, 그 벽을 실제로 쌓아 올리는 현장은 가장 낮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독점이 곧 안정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걸, 삼립의 2025년은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보여 준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이어져 노란봉투법. 이 법에는 인간을 위한다는 고귀한 가치가 담겨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책임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왔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위해 기업의 소유주는 법의 처벌을 대신 할 대리인을 세우기 시작했고, 노란봉투법이 강화되며 하도급 관리가 어려워지자 이젠 하청의 업무를 로봇이 할 수 있는지를 찾고 있다. 뭐 SPC만의 문제였겠는가, 산업 전반에 사람을 쓰는 일이 다 그렇다. 최고의 안전을 위한 투자는 사람이 없는 작업환경이 아니던가. 인간이 필요한 곳곳에 매뉴얼을 강화한다고 만에 하나 사고가 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까? 사후약방문이다. 사고는 언제나 모르고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저녁의 소주

저녁 식탁으로 자리를 옮기자. 삼겹살집에서 우리는 “소주 주세요”라고 말하지, 상표를 말하지 않는다. 주문을 받는 사장님이 브랜드 선택을 요청하지만 그 장고의 끝은 서울 지역에서는 보통은 초록 병으로 귀결된다. 그 당연함 속에 하이트진로의 벽이 있다. 이 회사가 소주 시장에서 쥔 몫은 대략 60%다. 한때는 65%에 이르렀다. 참이슬과 진로라는 두 브랜드가 그 자리를 함께 떠받친다. 그리고 이건 알게 되면 조금 놀라는 사실인데, 진로라는 이름은 영국의 한 주류 전문지가 매기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 순위에서 25년 연속 1위다. 위스키도 보드카도 아니고, 우리가 무심코 시키는 그 초록 병이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술이다.

이 벽은 빵의 벽과 결이 다르다. 소주 한 병의 원가에서 공장 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빵만큼 무겁지 않다. 대신 이 벽을 떠받치는 건 습관이다. 삼겹살에는 참이슬, 이라는 오래된 손의 기억. 사람들은 소주를 고를 때 성분표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늘 마시던 걸 마신다. 그 습관이 60%라는 숫자의 정체다. 그리고 이 회사는 매출액 약 2조 5천억과 1,300~1,700억 원 수준의 영업이익이 차곡차곡 적립된다.

하이트진로실적
매출2조 4,986억원
영업이익1,723억원
당기순이익411억원

※ 2025년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그렇다면 그 습관은 어디서 왔을까.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이 습관에는 설계자가 있었다. 절반은 국가였고, 절반은 회사 자신이었다.

진로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의 진지리라는 마을에서 시작했다. 보통학교 교사였던 장학엽이 동업자 둘과 차린 진천양조상회. 이름의 ‘진’은 마을에 있던 못 진지(眞池)에서 왔고, ‘로’는 증류기 끝에 이슬처럼 맺히는 술방울에서 왔다. 회사는 그 마을 이름을 100년째 병에 붙이고 다니는데, 정작 그 마을은 이제 갈 수 없는 땅이다. 상표의 동물도 처음에는 두꺼비가 아니라 원숭이였다. 서북 지방에서 원숭이는 복을 부르는 영물이었다고 한다. 전쟁 통에 남쪽으로 내려와 보니 원숭이는 교활한 짐승 취급을 받았고, 1954년 회사는 상표를 두꺼비로 바꿨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할 때의 그 두꺼비다. 같은 회사, 같은 술인데, 38선을 넘자 병에 그려진 동물이 바뀌었다.

그리고 국가가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1965년, 쌀이 모자라던 정부는 소주에 곡물을 쓰는 것을 금지했다. 쌀로 내리던 증류식 소주가 사라지고, 모든 소주 회사가 주정을 받아 물에 타는 희석식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400개가 넘게 난립하던 소주 회사를 도마다 하나씩, 10개로 줄였다. 1976년에는 국세청 훈령 한 장으로 규칙이 하나 더 생겼다. 도매상은 소주 구입액의 절반 이상을 자기 도에서 만든 소주로 채울 것. 무학은 경남에, 보해는 전남에, 금복주는 대구에 갇혔다. 그리고 진로에게 배정된 땅은 서울과 경기였다. 인구가 가장 많고, 소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곳.

벽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세워진 것처럼 보였지만, 벽 안에 딸린 마당의 크기는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1996년 겨울, 헌법재판소가 이 제도를 위헌이라고 판정했다. 지역의 독과점을 고착 시킨다는 이유였다. 벽을 허문 결정이었는데, 허물어진 벽 너머로 진격한 것은 가장 큰 마당을 이미 쥐고 있던 진로였다. 1998년 가을에 참이슬이 나왔다. 소주는 25도라는 오래된 상식을 깨고 23도. 여섯 달 만에 1억 병이 팔렸고, 2년쯤 지나자 전국에서 팔리는 소주의 절반이 이 술이었다.

물론 그 사이 회사가 무사했던 것은 아니다. 문어발 확장 끝에 1997년 부도가 났다. 구조조정을 자문하던 골드만삭스는 그 와중에 진로의 채권을 액면가의 10~20%에 사 모았고, 뒷날 원금의 다섯 배쯤을 회수해 간 것으로 추산된다. 회사는 법정관리까지 갔다. 2005년의 매각 입찰에는 열 곳이 들어왔다. 그중 몸집이 가장 작았던 하이트맥주가 3조 4,100억 원, 가장 큰 값을 썼다. 맥주 회사가 소주 회사를 삼킨 게 아니라, 사실은 소주라는 사업이 앞으로 얼마를 벌어 줄지 가장 정확하게 계산한 회사가 이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회사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두꺼비는 살아남았다. 습관의 벽이란 그런 것이다. 주인이 무너져도 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데 습관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사람들은 예전만큼 독하게 마시지 않는다. 혼자 마시고, 집에서 마시고, 가볍게 마신다. 그래서 하이트진로는 참이슬의 도수를 16도에서 15.7도로, 아주 조금 낮췄다. 0.3도. 우스울 만큼 작은 숫자지만, 나는 이 소수점에서 오래된 회사의 긴장을 읽는다. 습관이 바뀌는 방향을 놓치지 않으려고, 벽이 제 몸의 각도를 아주 조금씩 트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셈도 있다. 도수를 내리면 주정이 덜 들어가 원가가 내려가고, 값에 따라 매겨지는 주세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일석이조 아니던가.

브랜드는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옷 브랜드나 스니커즈 회사와 손을 잡으며 말을 걸고, 과일 맛 소주를 들고 아흔 개가 넘는 나라로 나갔다. 소주 수출액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해마다 30~40%대로 뛰었다. 요즘은 그 가파른 오르막이 한풀 꺾여 완만한 능선을 걷고 있다. 습관의 벽은 가만히 서서 버티는 게 아니라, 조금씩 자기를 갱신하며 버틴다. 그리고 그렇게 갱신된 습관은 국경까지 넘는다.

물론 이 벽도 시험 받는다. 술을 덜 마시는 시대, 줄어드는 인구, 저도주나 위스키로 옮겨 가는 입맛. 2025년 하이트진로의 소주 매출도 소폭 뒷걸음쳤고, 이익은 그보다 크게 줄었다. 더 이상 무차별 폭격으로 이뤄지던 회식이 문화가 아니게 되고, 젊은 20대도 근손실을 걱정하며 술로 만취하지 않으려고 한단다. 훌륭하다. 술과 담배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적응되는 것인데, 젊은 나이일수록 그런 무뎌짐과 멀어지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이다.

그럼에도 알콜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진로 소주의 1위 자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습관이라는 벽은, 원가라는 벽보다 대체로 천천히 무너진다. 무너지기 전에 스스로 모양을 바꿀 시간까지 벌어 준다.

같은 식탁, 다른 벽

구분SPC삼립 (빵)하이트진로 (소주)
시장 지위양산빵 1위 (압도적)소주 약 60% (참이슬+진로)
2025년영업익 -59% · 순익 -84%1위 유지, 완만한 둔화
벽의 뿌리브랜드 + 전국 공장 인프라브랜드 + 소비 습관
약한 구석공장 원가·안전·사고저도주·저음주·인구 감소
최근 움직임안전투자·교대제 개편(고정비↑)저도주 리뉴얼·해외수출 급증(2024 +44%)

같은 식탁 위의 두 독점이지만, 벽의 체질은 이렇게 다르다. 삼립의 벽은 공장에 붙어 있어 원가와 사고에 흔들리고, 하이트진로의 벽은 사람의 습관에 붙어 있어 좀처럼 흔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갱신을 거쳐 국경 밖으로 자란다.

어떤 독점은 지키는 데 매년 큰돈이 들고, 어떤 독점은 오래된 습관 위에서 비교적 헐값에 유지된다. 우리가 ‘독점’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리는 것들 안에, 이렇게 서로 다른 체온이 있다.

브랜드의 시간, 현장의 시간

회사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1인당 매출1인당 영업이익
SPC삼립3,149명5,316만원6.3년약 10.7억원약 1,200만원
하이트진로2,935명1억 2,399만원18.3년약 7.6억원약 5,900만원

※ FY2025 사업보고서 기준 어림값. 1인당 값은 삼립은 연결 매출(3조 3,705억)·하이트진로는 별도 매출(2조 2,404억)을 각 직원수로 나눈 것. 하이트진로 평균 연봉에는 희망퇴직 등 일회성 비용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두 회사를 나란히 놓으면, 같은 식탁 위의 두 회사가 얼마나 다른 체온으로 사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연봉은 2.3배, 근속은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앞에서 나는 두 벽의 체질이 다르다고 적었는데, 이 표는 그 문장의 숫자 버전인 셈이다. 소주라는 안정된 벽 안에서 사람들은 오래 머물고, 1인당 5,900만 원의 이익을 남기며, 1억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18년이라는 시간을 잠깐 생각해 본다. 입사하던 해에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한 회사에서 보낼 수 있다는 건, 그 회사가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립 쪽은 조금 다른 온도다. 2025년의 이익 급감 뒤에는 안전 투자와 근무 형태 변경이 있었고, 그건 결국 공장 현장의 이야기다. 브랜드는 견고해도, 그 브랜드를 실제로 굽고 나르는 현장은 최근 몇 년 꽤 출렁였다. 그리고 그 출렁임의 한가운데에는, 앞서 적은 두 사람의 죽음이 있다. 같은 ‘오래된 독점’이라도, 브랜드의 시간과 현장의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회사의 뒤늦은 안전투자에 대한 영수증이 SPC삼립의 직원들의 생산성이 낮다고 해석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재화를 소비할 때 브랜드를 신경 쓰지 않는 소비자의 무심함. 그 무심함 이야말로 두 회사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올린 벽의 실체다. 다른 선택지를 굳이 떠올리지 않는 것. 늘 사던 걸 사는 것. 독점은 종종 거창한 장벽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습관의 축적으로 완성된다. 다만 이제 나는, 비닐 포장 뒤에 있는 공장의 시간과 초록 병 뒤에 있는 습관의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우리 일상 속 빵과 소주는 내일도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초록 병에는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다. 소주의 몸통을 이루는 건 결국 물과 알코올인데, 그 알코올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를 따라가면 브라질의 사탕수수 농장과 미국의 옥수수 벨트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사슬이 나온다. 그 이야기는 이 책의 뒤편, 식탁을 거슬러 오르는 장에서 다시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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