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주편-1] 커피 한 잔과 참치 한 캔 (동서식품, 스타벅스코리아, 동원산업)

어느 회사 탕비실에나 노란 봉지가 있다. 뜯어서 뜨거운 물에 털어 넣으면 되는 커피믹스, 오전의 커피다. 점심을 먹고 나면 손에 들리는 것이 바뀐다. 초록 세이렌이 그려진 컵, 얼음 가득한 오후의 커피. 그리고 퇴근하고 입맛이 없는 저녁엔 계란 프라이 하나 부치고, 참치캔 뚜껑을 따서 밥에 비빈다. 너무 익숙해서, 이것들을 대체 누가 만들고 누가 돈을 버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앞 장까지 나는 전기와 통신과 반도체 — 나라의 뼈대를 이루는 큰 벽들을 지나왔다. 이번에는 시선을 한참 낮춰 보려 한다. 벽은 거창한 곳에만 서 있는 게 아니다. 하루 세 번, 우리 손이 닿는 자리마다 하나씩 서 있다.

맥심이라는 이름의 나라

한국에서 커피믹스를 사려고 마트에 가면, 사실 고를 것이 별로 없다. 맥심이 있고, 그 옆에 카누가 있고, 조금 떨어져 맥스웰하우스가 있다. 서로 다른 회사 제품 같지만, 셋 다 한 회사의 것이다. 동서식품. 조제커피 시장에서 이 회사의 점유율은 약 88%에 이른다. 열 봉지 중 아홉 봉지가 사실상 한 집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이런 걸 두고 경쟁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민망하다.

이 벽이 서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은 커피믹스를 사는 게 아니라 맥심을 산다. 이름이 곧 물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브랜드가 시장 그 자체의 다른 이름이 되면, 경쟁자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진다. 사람들의 손이 이미 기억하고 있는 그 노란 봉지를, 습관에서 떼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맛의 문제가 아니라 세월의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쯤 물어볼 만하다. 반세기 동안, 왜 아무도 이 성을 함락하지 못했는가. 답의 절반은 예상대로다. 1. 가격 : 믹스 한 봉은 이백원 남짓, 세상에서 가장 싼 커피라 아래로 파고들 자리가 없다. 그리고 2. 습관 : 이름이 시장 그 자체가 된 세월. 그런데 나머지 절반이 뜻밖이다. 이 성이 안전한 마지막 이유는, 3. 마당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조금씩 작아지는 시장에 새 공장을 짓고 들어올 회사는 없다.

도전자였던 2위와 3위는 합쳐서 열 봉지 중 한 봉지도 못 가져가는 처지로 싸움을 접은 지 오래다. 그 3위가 세계 최대의 식품 회사 네슬레라는 사실이 이 아성의 상황을 말해 준다. 마음만 먹으면 성문을 부술 수 있을 거인이, 줄어드는 믹스커피 시장을 공격하는 대신 자라나는 캡슐커피 시장에 힘을 쏟고 있다. 네스프레소를 파는 게 맥심과 싸우는 것보다 남는 장사라서다. 그러니까 이 벽의 마지막 비밀은 높이가 아니다. 함락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도 탐내지 않는 성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이 초라한 것은 아니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다는 말과, 남는 게 없다는 말은 다르다. 동서식품의 2025년 한 해 매출은 1조 8,105억 원. 전년보다 1.1% 늘었고, 영업이익은 1,793억 원이었다. 다만 순돈은 1,684억 원으로 3% 남짓 줄었는데, 오르는 원가를 광고비를 깎아 막아 낸 흔적이다. 요컨대 크게 자라지도, 좀처럼 무너지지도 않는 숫자다. 줄어드는 시장이라지만 아직 조 단위의 마당이고, 그 마당의 90%가 해마다 이천억 가까운 이익이 또박또박 걷힌다. 그리고 이 매출의 80% 이상은 여전히 커피, 그중에서도 믹스커피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완벽해 보이는 왕국에는 조용한 균열이 있다. 노란 봉지를 뜯는 손이 해마다 줄고 있다. 탕비실의 종이컵 대신 사무실 책상엔 얼음 가득한 플라스틱 컵이 놓이고, 점심 후의 행렬은 편의점 냉장고와 골목의 저가 커피로 향한다. 믹스커피라는 마당 자체가 늙어 가는 것이다. 88%를 쥐고 있어도, 그릇이 작아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동서식품은 2024년부터 2025년 사이 커피 값을 두 차례 올렸다. 재작년과 지난해 기후가 뒤틀려 원두값이 갑절로 뛴 탓도 컸다. 구조는 같다. 파는 양을 더 늘리기 어려우니, 하나에 붙는 값을 올리는 것.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앞서 카카오가 그랬고, 통신 회사들이 그랬다. 다 자란 시장의 지배자가 택하는 길은, 업종이 달라도 신기하게 서로 닮아 있다.

값을 올리는 장면보다 흥미로운 것은, 값이 내려오지 않는 장면이다. 원자재 시장에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값은 오를 때는 로켓을 타고, 내릴 때는 깃털로 떨어진다는 것. 원두값이 오르던 두 해 동안 커피 값은 두 번 올랐다. 그리고 올해, 브라질의 풍작으로 원두값이 열여덟 달 만의 바닥까지 꺾였을 때, 인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늘 준비되어 있다. 원두가 내리면 환율이 있고, 환율이 잠잠하면 인건비 이야기를 하면 되고, 그다음엔 물류비와 포장재까지 언급하면 된다. 가격을 내리지 못 할 이유는 계절마다 바뀌는데 가격의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을 회사의 탐욕이라고 부르면 절반만 맞는 말이 된다. 나머지 절반은 구조다. 경쟁이 있는 시장에서 원가가 내리면, 누군가는 먼저 값을 내려 남의 손님을 뺏는다. 값을 내리는 것은 선의가 아니라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 봉지 중 아홉을 한 집이 파는 시장에는, 그 공격을 개시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내려간 원가는 가격표가 되는 대신 조용히 이익이 된다. 벽의 힘은 값을 올리는 순간이 아니라, 내리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드러나는 것이다. 봉지 하나에 이백원, 아무도 영수증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값이라는 것도 이 침묵을 거든다. 앞서 통신 요금 고지서에서 본, 바로 그 침묵이다.

커피의 시대, 믹스의 황혼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믹스커피는 늙어 가는데, 커피라는 시장 전체는 한국에서 가장 뜨겁게 자란 시장이라는 것이다. 한 해 9조 원. 절반은 카페에서, 절반은 마트와 편의점 선반에서 팔린다. 커피를 파는 가게가 전국에 12만 곳, 그리고 골목마다 컵을 든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시장을 꽤 가까이서 들여다본 적이 있다. 회사에서 커피 사업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몇 주 동안 이 바닥의 숫자들을 파헤쳤다. 보고서의 결론은 한 줄이었다.

‘들어갈 틈이 없음.’

벽이 어떻게 생겼는지 책상 위에서나마 직접 두드려 본 셈이다.

그때 본 잔치의 서열은 이랬다. 꼭대기에는 손님에게 커피가 아니라 공간과 이름값을 파는 스페셜티 카페들. 바닥에는 저가 커피가 있다.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가 가능한 데는 기술적인 비밀이 하나 있는데, 한국인이 유난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것이다. 차가운 커피는 뜨거운 커피보다 풍미의 차이가 덜 드러나고, 그래서 값싼 로부스타 원두로도 장사가 된다. 얼음이 혀를 평준화하고, 평준화된 혀가 가격 경쟁을 연 셈이다.

그리고 이쪽의 계산서에서, 돈이 흐르는 길은 따로 나 있다. 천오백원짜리 커피를 팔아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는 것은 가맹점주의 몫이고, 본사는 수천 개 점포를 오픈하면서 원두와 컵과 시럽을 대는 교육회사이자 도매상으로서 20%에서 40%대의 영업이익률을 남긴다. 그 열매는 배당이 되어 밖으로 나간다. 1위 브랜드인 메가커피의 본사는 최근 몇 해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했고, 받는 이는 이 회사를 사들인 사모펀드들이다. 2위 브랜드는 아예 필리핀 회사에 통째로 팔렸다. 간판은 커피집인데 실속은 도매상이고, 열매는 펀드가 거둔다.

선반 쪽에서도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믹스커피가 비운 자리를 알루미늄 캡슐이 채우고, 냉장고의 캔커피와 파우치가 그 옆을 채운다. 커피라는 시장은 9조 원으로 자라는 동안 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방으로 쪼개졌고, 방마다 주인이 다르다. 커피믹스의 방만이, 자라기를 멈춘 채 여전히 한 주인의 것이다.

초록 세이렌의 장부

SCK컴퍼니(스타벅스). 한 해 3조 2천억 원을 파는, 카페의 대명사. 매장 수로는 미국과 중국 다음, 세계에서 세 번째로 스타벅스가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장부를 열어 보면 뜻밖의 그림이 나온다. 3조를 팔아 남긴 영업이익이 1,730억, 즉 매출의 5% 남짓이다. 목 좋은 자리의 임대료와, 2천여 개 매장에서 앞치마를 두른 2만 2천명의 인건비가 커피값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장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박한 장사를 무엇으로 버티는가. 이 회사의 돈 버는 구조는 세 겹이다.

첫째는 규모다. 스타벅스는 저 골목의 저가 커피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가맹점이 단 하나도 없다. 2천여 개 전부가 직영이라, 커피값은 한 푼도 새지 않고 회사 금고로 들어온다. 대신 임대료와 앞치마의 월급도 전부 회사 몫이라, 남는 게 얇은 대신 덩치가 큰 장사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사슬의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다. 건물에 스타벅스가 들어오면 건물값이 오른다는 것을 건물주들이 안다. 역세권에 빗대 스세권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그래서 이 회사는 목 좋은 자리에 들어가면서도 셋값을 깎거나, 아예 고정 월세 대신 매출의 일부를 나누는 조건으로 계약하곤 한다. 간판이 임대료를 대신 치르는 셈이다.

셋째는 커피가 아닌 것들이다. 같은 텀블러도 초록 세이렌이 붙으면 그래도 판매가 되긴 한다. 계절마다 굿즈가 나오고, 연말이면 다이어리를 받으려 커피 열일곱 잔을 마시는 사람들이 아직도 생각보다 많다. 커피는 사람을 불러들이는 미끼고, 정작 마진은 컵과 가방과 우산에서 나오는, 카페의 얼굴을 한 잡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 얇은 이익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구조가 마저 보인다. 회계 장부에서 임대료·인건비와 나란히, 이익이 계산되기 전의 비용으로 먼저 빠지는 돈이 있다. 이름값이다. 스타벅스라는 간판을 쓰는 대가로 순매출의 일정률을 로열티로 시애틀 본사에 보낸다. 계약서의 요율은 비공개지만 업계에서는 5% 안팎으로 추정한다. 그렇게 건너간 돈이 한 해 영업이익과 맞먹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니까 영업이익 1,730억은 이 이름값을 다 치르고 난 뒤의 성적표다. 뒤집어 말하면, 로열티가 없었다면 이익이 두 배였을 회사라는 뜻이다. 이것은 비용이다. 남의 이름을 빌린 임대료라서, 장사가 잘되든 못되든 시애틀의 본사는 먼저 받게된다. 원두값과 임대료가 올라도 로열티율은 꿈쩍하지 않으니, 몇 해 전 10%였던 이익률이 5%대로 주저앉는 동안에도 이름값 송금은 꼬박꼬박 늘었다.

그렇게 임대료까지 치르고 확정된 순이익 1,425억. 여기서 이번엔 주인들의 몫이 나간다. 이 회사는 최근 3년 내리, 해마다 정확히 1,062억 원씩을 배당했다. 이익이 늘든 줄든 액수가 같다. 주주들의 몫이 먼저 정해져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3분의 2는 대주주인 서울의 이마트로, 3분의 1은 싱가포르의 국부펀드로 간다. 2021년 미국 본사가 지분을 내놓을 때, 이마트가 값이 부담스러워 동행으로 데려온 재무적 투자자다. 그리하여 3조 원의 커피값이 한 바퀴를 다 돌면, 아래의 계산서가 남는다.

SCK컴퍼니회계 계정금액비고
손님이 낸 커피값매출액3조 2,380억매장 2,076개, 세계 3위
커피를 파는 데 든 돈매출원가 + 판매비와관리비3조 649억원두·임차료·2만 2천명의 인건비
└ 그중 시애틀로 간 이름값지급수수료 중 로열티약 1,600억*판관비 지급수수료(3,828억)에 포함
남긴 돈영업이익1,730억이익률 5.3%, 4년 전의 절반
세금 뒤에 남은 돈당기순이익1,425억
주인들이 가져간 돈배당금 지급1,062억이마트 약 717억·GIC 약 345억
회사 곳간에 남은 돈이익잉여금 유보363억커피값 100원 중 1원꼴

*로열티는 감사보고서상 “순매출액의 일정율”로만 공시되어 요율 비공개,

여기서 산수를 하나 해 볼 만하다. 이마트가 그해 추가 지분에 치른 돈은 4,742억 원. 저 배당을 기준으로 이 지분에 떨어지는 몫은 한 해 190억 남짓이니, 배당만으로 본전을 찾으려면 25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신세계 그룹 설계자의 주판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이 돈으로 이마트가 산 것은 지분 17.5%가 아니라 경영권이었다. 절반씩 나눠 갖던 회사가 내 회사가 되면서, 3조 원의 매출과 해마다 들어오는 배당 717억 원이 통째로 이마트의 장부에 얹혔다. 이미 가진 성에 돈 버는 별채를 붙여 넣는 이런 인수를 업계에서는 볼트온이라고 부른다. 나사로 조여 붙인다는 뜻이다. 즉, 4,742억짜리 나사로 스타벅스 코리아 + 이마트에 매년 1천억이 채워지는 현금 기계 한 대를 유통 제국에 조여 넣은 셈이니, 남는 거래라고 여겼을 만하다.

싱가포르의 셈법은 또 달랐다. 경영에 관심 없는 재무적 투자자에게 배당은 완전한 답이 아니다. 그들의 본전은 처음부터, 언젠가 이 회사가 더 비싸질 것이라는 믿음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회사는 상장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지만, 업계는 이 동행의 끝에 기업공개가 있다고 오래전부터 읽어 왔다. 국부펀드의 시계에 출구 없는 투자는 없기 때문이다. 2조 7천억이라는 값을 치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커피가 아니라 그 믿음의 유지였다.

그 믿음을 굳건하게 해주는 이 회사에는 커피 말고 다른 장사가 하나 더 있다.

‘돈을 맡아 두는 장사다.’

사람들은 스타벅스 앱에 돈을 미리 충전해 둔다. 선물 받은 카드까지 합치면, 아직 커피로 바뀌지 않은 채 회사에 맡겨져 있는 돈이 지난해 말 기준 4,276억 원. 한 해 동안 새로 충전되는 돈만 1조 7천억이 넘는다. 웬만한 저축은행 부럽지 않은 예치금이 돈다. 이 돈에 스타벅스는 이자를 주지 않는다. 손님들이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그 담보로 커피 쿠폰을 받는 구조인 것이다. 충전만 해 두고 끝내 쓰지 않는 잔돈까지 회사의 몫이 된다. 이 돈은 회사 장부에 빚으로 적혀 있다. 언젠가 커피로 갚아야 할 빚. 다만 이자가 없고, 갚는 날을 손님이 정하지 않는 빚이다. 그래서 업계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은행이라고. 이런 기가막힌 전략은 우리에게도 꽤 익숙하다. 이제는 전 국민이 다 알게 된 한국 부동산 세계의 치트키. 돈은 세입자가 빌려서 채워 넣고 이자까지 내어주고, 집주인은 무이자로 돈을 빌리는 갭투자와 전략적 맥락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올해, 그 은행이 흔들리는 장면을 우리 모두가 지켜봤다. 5월 18일, 스타벅스가 ‘탱크데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고 탱크 모양의 텀블러를 내놓았다.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패착 이었다. 결국 신세계 그룹 회장이 카메라 앞에 고개를 숙였고, 6월 회사는 고객들이 맡겨 둔 그 4,276억 원의 인출 창구를 2주간 조건 없이 열었다. 전세 만기일 도래 전에 전세금을 집주인이 돌려주는 행위 같은 것이다.

즉, 이 돈의 회계 주소를 정확히 적으면, 재무상태표 유동부채 항목의 계약부채(선수금) 계정이다. 손님이 충전한 돈은 매출이 아니라 빚으로 적혀 있다가, 커피를 받아 가는 순간에야 그 잔 값만큼 매출로 옮겨 가는데, 회사는 그 옮겨 가기를 기다리던 부채 계정 하나를 통째로 환불 창구에 올린 것이다. 충전금을 썼든 안 썼든, 이유를 묻지 않고 돌려주겠다는 것. 손익계산서에는 한 줄도 잡히지 않는다. 부채와 현금이 나란히 줄어들 뿐이다. 다만 그 현금은, 이 회사가 은행처럼 무이자로 굴려 온 바로 그 돈이다. 신뢰를 회복하려는 승부수였지만, 재무의 언어로 읽으면, 갚는 날을 손님이 정하지 않던 빚의 만기를, 회사가 제 손으로 오늘로 앞당긴 사건이었다.

매장커피의 불매는 견딜 수 있어도, 맡긴 돈을 찾아가는 행렬은 다른 종류의 사건이다. 통신 회사들의 그 여름에서 배웠듯이, 벽에 금을 내는 것은 경쟁자가 아니라 사고다. 그리고 이 사고는 벽의 구조 하나를 더 드러냈다. SCK컴퍼니의 지분은 이마트가 쥐고 있지만, 스타벅스라는 이름의 주인은 시애틀의 본사다. 계약에는 이마트의 잘못으로 라이선스가 깨지면 본사가 지분 전부를 할인가에 사 갈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2조 7천억을 치르고 산 부동산 등기가, 남의 손에 들린 도장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고로 치를 값은 아직 계산 중이다. 결제액이 줄었고, 모회사의 주가가 미끄러졌고, 증권가는 전망치를 깎았다. 25년짜리 계산서 위에, 새 계산서가 얹히는 중이다. 이 이야기, 어딘가 낯익지 않은가.

갇힌 왕

낯익을 수밖에 없다. 뭔가 사고 치고 사과하고 버티기 작전을 한 후 희미해질 때 다시 나타나는 케이스를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통신사의 해킹 사태에 지금껏 누가 분노하고 있는지 기억해 보자. 큰 사건도 몇 달이 지나면 분노가 아니라 농담의 소재가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대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회사가 그대로 서 있다.

다시 커피의 나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동서식품은 왜 이 뜨거운 마당으로 걸어 나가지 않는가. 반세기의 브랜드와 커피믹스의 성공 방정식을 들고서도. 답은 이 회사의 주주명부에 적혀 있다. 동서식품은 한국의 동서와 미국의 몬델리즈가 정확히 절반씩 지분을 나눠 가진 합작회사다. 그리고 맥심이라는 상표의 주인이, 사실은 몬델리즈다. 계약은 이 브랜드를 국내에서만 팔 수 있다고 정해 두었다. 세계의 K푸드 열풍 속에서 맥심만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 해외 마트에서 간혹 보이는 커피믹스는 보따리상의 것이다. 재작년 가을, 몬델리즈가 다른 커피 사업을 정리했다는 소식에 이제 수출길이 열리는가 하는 기대로 모회사 주가가 상한가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회사의 답은 짧았다. ‘수출 계획 없음’. 주가는 도로 내려앉았다.

그러니 이 회사가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나갈 수 없는 왕은 성 안에서 세를 걷는다. 벌어들인 돈은 절반씩 두 주주에게 배당되고, 남는 현금은 곳간에 쌓인다. 지난 십여 년간 매출은 16% 늘었는데 영업이익은 정점에서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랄 수 없게 지어진 벽이다. 맥심이라는 이름의 나라에서, 정작 그 이름은 왕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왕이 곳간만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 해 전부터 이 회사는 성 안에 새 벽을 쌓기 시작했다. 캡슐커피다. 카누의 이름을 단 전용 머신을 만들고, 그 머신에만 꽂히는 캡슐을 열여덟 가지로 늘렸다. 머신에는 계산이 들어 있다. 한국인이 결국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것을 알고, 보통 캡슐보다 1.7배 많은 원두를 담고 에스프레소와 물을 따로 뽑는 구조를 달았다. 얼음의 나라를 겨냥한 설계다. 이 장사의 구조는 사실 커피믹스와 같다. 기계를 들인 집은 그 기계의 캡슐을 사게 되고, 습관은 다시 매출이 된다. 믹스커피의 벽을 쌓았던 그 재료인 습관으로, 이번에는 부엌 조리대 위에 새 벽을 짓는다. 심지어 남의 머신에 꽂히는 호환 캡슐까지 따로 만들어 판다. 성문 밖으로는 못 나가니, 남의 성벽 안에 좌판이라도 깔아 두는 셈이다. 다만 이 캡슐 시장의 먼저 온 주인은 믹스에서 물러났던 그 거인, 네슬레다. 안방의 88%를 쥔 왕이 여기서는 열에 한 잔을 다투는 도전자다. 이 싸움의 결말은 아직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방향 하나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왕은, 안으로 깊이 판다. 반도체 세상의 HBM처럼 물리적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바다에서 식탁까지

이제 분위기를 환기해서 소개할 참치캔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이야기다. 바다 사나이의 낭만을 사업으로 펼친 동원그룹의 특성에서 이를 볼 수 있다.

국내 참치캔 시장에서 동원의 점유율은 약 80%. 40년 넘게 부동의 1위다. 그런데 이 벽은 브랜드나 습관만으로 세워진 게 아니다. 훨씬 더 아래에서부터, 바다에서부터 세워졌다. 동원은 참치를 잡는 회사에서 시작했다. 원양어선을 띄워 태평양에서 참치를 잡고, 그걸 자기 공장에서 가공해, 자기 유통망으로 식탁까지 보낸다. 잡는 것부터 파는 것까지 한 회사가 통째로 쥐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수직통합이라고 부른다. 남이 이 시장에 들어오려면 배도, 공장도, 유통망도, 그리고 반세기 넘게 쌓인 이름값까지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의 벽이 그랬듯, 이것 역시 돈보다 시간으로 쌓은 벽에 가깝다.

하청이 원청을 삼키다

동원의 야심은 국내에 머물지 않았다. 2008년, 동원은 약 4,450억 원을 들여 미국 참치캔 1위 브랜드 스타키스트를 인수했다. 이 거래에는 소설 같은 사연이 하나 붙어 있다. 스타키스트는 원래 동원의 원청이었다. 태평양에서 잡은 참치를 미국 회사의 캔에 담아 납품하던 하청 회사가, 사십 년 뒤 그 원청을 통째로 사들인 것이다. 금융위기로 세계가 얼어붙던 해였고, 적자에 허덕이던 원청은 매물로 나와 있었다. 옛 하청의 품에 안긴 스타키스트는 반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그래서 지금 동원은 한국 식탁뿐 아니라 미국 식탁에서도 참치캔 1위다. 미국에서의 점유율도 40%를 넘고, 스타키스트는 이제 한 해 1조 원 넘게 파는 회사가 되었다. 바다에서 시작한 벽이, 태평양을 건너간 셈이다.

다만 이 정복담에는 값비싼 각주가 하나 붙어 있다. 미국의 참치캔 시장 역시 소수의 성이 나눠 가진 마당이었는데, 그 성주들이 한동안 은밀히 값을 맞춰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스타키스트도 그 자리에 있었다. 유통업체와 소비자들의 소송이 십 년 가까이 이어졌고, 동원은 재작년까지 원고들 과의 합의에 도합 2억 1,900만 달러. 우리 돈 3천억 원이 넘는 값을 치르고 서야 이 장부를 닫았다. 그해 스타키스트의 손익계산서는 적자였고, 이듬해 에야 1,370억 원의 흑자로 돌아왔다. 독점이라는 벽 안의 왕들이 받는 유혹은 태평양 어느 쪽 물가에서나 같다. 문을 잠근 마당에서는, 값을 정하는 손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 유혹의 한국판 이야기들은 뒤에서 따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스타키스트는 시작이었을 뿐이다. 지난 이십 년 동원의 연대기는 절반이 인수의 목록이다. 우유 회사를 사고, 참치를 담을 유리병과 알루미늄 캔을 만드는 포장재 회사를 사고, 그 캔을 실어 나를 물류 회사를 샀다. 세네갈의 국영 수산회사까지 인수해 대서양 쪽에도 거점을 놓았다. 잡는 배에서 시작한 사슬이 담는 캔과 나르는 트럭으로, 바다 건너의 공장으로 한 마디씩 자라난 것이다. 2023년에는 국내 유일의 컨테이너 선사 HMM 인수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참치캔 회사가 국적 선사를 넘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 자체가 이 왕국의 크기를 말해 준다.

2025년 그룹 전체의 연결 매출은 9조 5,836억 원, 영업이익은 5,156억 원. 그해 7월에는 40년 넘게 증시에 올라 있던 동원F&B마저 상장폐지해 완전자회사로 끌어안으며 흩어져 있던 식품 사업을 한 몸으로 묶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동원F&B가 종속회사들과 함께 낸 연결 매출만 4조 8,777억 원이다. 물론 이 큰 숫자 가운데 참치캔은 일부일 뿐이다. 유가공과 육가공으로, 물류와 포장재로, 심지어 2차전지 소재에까지. 참치캔이라는 본체가 더 자라지 않으니, 그 옆에 방을 짓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성을 쌓아 온 것이다. 그리고 올해 초, 이 성은 다음 사냥을 준비하는 기색을 보였다. 태평양 건너의 그 스타키스트가 얼마 짜리인지 값을 매겨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시장은 그것을, 한 번 놓쳤던 국적 선사 HMM을 다시 노리기 위한 실탄 점검으로 읽었다.

이 왕국의 족보에는 각주가 하나 더 붙어 있다. 창업주 김재철은 원양어선 선장 출신이다. 젊은 나이에 배를 몰고 태평양으로 나갔던 사람이 이 성의 초석을 놓았는데, 물려줄 때가 되자 뜻밖의 결정을 했다. 장남에게는 참치가 아니라 증권사를 떼어 준 것이다. 그 동원증권이 지금의 한국투자증권. 여의도에서 손꼽히는 증권사다. 그러니까 참치가 번 돈의 한 갈래는 바다에 남아 참치 제국이 되었고, 다른 한 갈래는 여의도로 가서 금융이 되었다. 한 선장의 두 아들이, 하나는 물고기의 왕국을, 하나는 돈의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셈이다.

식탁 위의 벽

커피믹스와 카페와 참치캔. 이 장의 세 왕국은 저마다 단단한 벽을 가졌지만, 벽의 등기부는 전부 다르다. 동서식품의 벽은 절반이 남의 것이다. 그래서 성 밖으로 한 발도 나가지 못한 채, 안마당에 새 벽을 쌓는다. SCK컴퍼니의 벽은 이름 자체가 남의 것이다. 그래서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이름값을 먼저 치르고, 잘못하면 성 전체를 할인가에 내놓아야 하는 조항 아래 서 있다. 동원의 벽만이 온전히 제 것이다. 그래서 태평양을 건너 옛 원청을 삼키고, 국적 선사까지 넘본다. 셋의 실력이 달라서가 아니다. 벽을 쌓는 것은 세월이지만, 그 벽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결국 그 벽이 누구 것이냐가 정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뒤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항목동서식품 (커피)SCK컴퍼니 - SCK컴퍼 (커피)동원산업 (참치·그룹)
국내 지배 시장커피믹스 약 88%카페의 대명사참치캔 약 79.8%
2025년 실적매출 1조 8,105억 영업이익 1,793억매출 3조 2,380억 영업이익 1,730억매출 9조 5,836 영업익 5,156억
벽의 성격브랜드와 습관이름과 자리바다부터 수직통합
벽의 등기절반이 남의 것 (몬델리즈 50%)이름이 남의 것 (시애틀 라이선스)온전히 제 것

※ 2025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한해에서 스무해를 머무는 사람들

우리의 먹거리를 지키는 이 회사들은, 회사의 특징 만큼이나 사람의 머뭄새도 저마다 다르다.

회사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1인당 매출1인당 영업이익
동서식품1,091명약 1억원약 20년약 16.4억원약 1.6억원
스타벅스 코리아24,358명--약 1.3억원약 710만
동원F&B3,260명4,944만원9.2년약 6.7억원약 3,100만원

*동원산업은 지주회사 성격으로 비교군 매칭을 위해 동원 F&B로 비교함

동서식품은 스무 해 전에 들어온 천 백명이 여전히 벽 안에 있는 성이다. 경력직을 거의 뽑지 않고, 감사보고서의 급여 총액은 4년째 거의 같은 자리다. 사람도 급여도 함께 멈춘, 그러나 한 사람이 16억 원어치를 파는 성. 1장의 그 담배 회사보다도 긴 근속이다. 한때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신의 직장 목록에 빠지지 않던 이름이고, 식품 업계의 급여 서열에서는 지금도 맨 윗줄이다. 스무 해를 머문다는 것 자체가, 이 성의 안쪽이 어떤지에 대한 가장 정직한 증언일 것이다.

스타벅스는 정반대다. 2만 4천명의 손이 한 사람당 1억 3천만 원어치의 커피를 내린다. 같은 커피인데 봉지로 파는 성과 잔으로 파는 성 사이에서, 사람 하나가 만드는 돈은 열 배 넘게 벌어진다. 잔에는 그만큼 많은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비교에는 조심할 구석이 있다. 전 매장 직영이라 앞치마를 두른 직원분들 전부 이 회사의 직원 명부에 오르니, 연봉과 근속은 저울에 달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숫자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매장에 들어설 때마다 웃으며 맞아 주던 그 직원분들에게, 나는 늘 고마웠다는 말 적어 두고 싶다.

그리고 동원F&B의 3,260명은 그 사이 어디쯤 에서, 바다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긴 사슬을 지킨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아 보이는 것은, 생산직 위주의 통계라는 점과, 참치캔이라는 물건의 성격이 여기 얽혀 있을 것이다. 매대에서 가격표가 몇 백원만 움직여도 손이 멈추는, 필수재에 가까운 물건. 그 값을 지키는 비용의 상당 부분이 결국 공장과 물류의 인건비에서 조여지는 구조다. 벽은 높은데 그 벽을 지키는 손에 남는 몫은 크지 않다는 것. 이 관찰은 한참 뒤, 사슬을 따라가는 여행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벽의 재료가 다르면, 벽에 필요한 사람의 수와 그들이 머무는 시간도 다르다. 그리고 좋은 기업과 좋은 직장은 같은 말이 아니다. 기업의 장부에서 사람은 비용 계정이고, 사람의 장부에서 기업은 소득 계정이기 때문이다. 같은 돈이 한쪽 장부에서는 줄여야 할 숫자로, 다른 쪽 장부에서는 늘어야 할 숫자로 적힌다. 그 사이 어딘가의 균형점을,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에 맞춰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권장한다. 분명한건, 급여가 높다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회사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잠시 기업이라는 어떤 땅을 지나가며, 누군가는 정착하며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이 글은 내가 가진 여정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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