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점기업-1] 설탕은 아무 죄가 없다

설탕은 하얗다. 그리고 대체로 무해해 보인다. 아침 커피에 한 스푼 털어 넣을 때, 우리는 그 하얀 가루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값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설탕은 그냥 설탕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순해 보이는 물건 중 하나다. 그런데 2026년 2월, 그 하얀 가루 뒤에서 4천억 원짜리 담합이 걸어 나왔다.

지금까지 나는 한 회사가 홀로 차지한 벽들을 둘러봤다. 이제부터 얼마간은 조금 다른 벽을 볼 참이다. 한 회사가 아니라, 몇몇이 나란히 서서 함께 지키는 벽. 경제학은 이걸 과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과점에는, 독점에는 없는 은밀한 유혹이 하나 있다. 어차피 우리 몇뿐인데 굳이 피 흘리며 싸울 것 없이, 슬쩍 값을 맞춰 버리면 어떨까 하는 유혹. 설탕 이야기는, 그 유혹에 관한 이야기다.

셋이서 나눈 하얀 시장

한국에서 설탕을 만드는 회사는 사실상 셋뿐이다.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2024년 내수 판매량 기준으로 CJ제일제당이 절반가량인 49%, 삼양사가 3분의 1쯤인 32%, 대한제당이 나머지 19%를 가져간다. 셋을 합치면 89%다. 남은 11%를 두고 자잘한 이름들이 다투지만, 이 하얀 시장은 결국 세 회사의 것이다.

이 셋의 이름 옆에는 설립 연도부터 나란히 적어 둘 필요가 있다. 1953년, 1955년, 1956년. 전쟁이 끝난 직후의 3년 사이에 세 회사의 설탕이 모두 태어났다. 우연이 아니다. 그 시절 설탕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원료인 원당이 미국의 원조 물자로 들어왔고, 그걸 배정받으려면 정부가 골라 줘야 했다. 역사책이 삼백산업이라고 부르는 시절 설탕과 밀가루와 면직물, 세 가지 하얀 것들로 나라 경제가 굴러가던 때다. 1953년 11월, 이병철의 CJ제일제당이 부산 공장에서 첫 국산 설탕을 쏟아냈다. 삼성이라는 재벌의 첫 제조업이 바로 이 하얀 가루였다. 1955년에는 호남의 농장에서 출발한 삼양사가 울산에 제당공장을 올렸고, 1956년에는 대동제당, 지금의 대한제당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니까 이 과점은 시장에서 경쟁 끝에 살아남은 셋이 아니라, 출발선에서부터 초대장을 받은 셋에 가깝다. 벽은 처음부터 국가가 함께 쌓아 준 것이었다.

칠십 년이 지난 지금, 셋의 몸집은 서로 딴판이 됐다.

CJ제일제당은 설탕으로 태어나 설탕이 곁가지가 된 회사다. 비비고 만두와 햇반을 팔고 아미노산을 발효시키는 연매출 27조 원의 식품·바이오 그룹에게, 설탕은 이제 매출의 한 귀퉁이일 뿐이다.

삼양사는 흔히 설탕 회사로 불리지만, 장부를 열어 보면 절반은 화학 회사다. 설탕과 밀가루와 전분당 위에 자동차와 가전에 들어가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물을 거르는 이온교환수지, 음료 페트병 패키징까지 얹어, 연결 매출의 40%가 넘는 몫을 화학에서 번다. 참고로 불닭볶음면의 삼양식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름만 같을 뿐이다. 요즘은 설탕을 만들던 손으로 설탕의 대체재인 알룰로스를 국내 최대 규모로 찍어 내고 있으니, 백 년 된 설탕 회사가 설탕 없는 단맛에 베팅하는 셈이다.

대한제당은 셋 중 유일하게 지금도 설탕과 사료가 벌이의 거의 전부인, 설탕 전업에 가장 가까운 회사다. 몸집은 갈라졌지만, 하얀 가루 앞에서는 셋이 다시 하나가 됐다.

회사2025 매출2025 영업이익주력 사업
CJ제일제당27조 3,426억 (+0.4%)1조 2,336억 (-15.0%)식품·바이오 (설탕은 일부)
삼양사2조 5,625억 (-4.1%)1,117억 (-16.3%)식품소재 + 화학소재
대한제당1조 3,563억 (-1.3%)566억 (+52.9%)설탕·사료 (전업에 가까움)

※ FY2025 사업보고서 연결 기준. CJ제일제당 연결에는 물류 자회사 CJ대한통운이 포함돼 있다. 별도 기준은 CJ제일제당 7조 2,811억/1,856억, 삼양사 1조 8,971억/657억, 대한제당 1조 406억/478억 — 아래 인력 표의 1인당 값은 이 별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같은 초대장을 받고 출발한 셋의 몸집이 왜 스무 배나 벌어졌을까. 갈림길은 벽을 대하는 태도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CJ제일제당은 설탕이 벌어 준 돈과, 그보다 중요하게는 설탕이 가르쳐 준 기술을 들고 일찌감치 벽 밖으로 나갔다.

원당을 다루던 회사는 발효를 배웠고, 그 발효가 조미료가 되고, 다시 사료에 넣는 아미노산이 됐다. 오늘 CJ제일제당은 라이신과 트립토판 같은 사료용 아미노산에서 세계 1위다. 식탁 쪽도 마찬가지다. 햇반과 비비고 만두는 관세가 지켜 주는 내수가 아니라 미국 마트 매대에서 싸운다. 미국 마트에서 팔리는 만두의 40%가 비비고다, 2019년에는 미국 냉동식품 회사 슈완스를 1조 5천억 원에 사들여 그 매대까지 손에 넣었다.

반면 대한제당은 설탕과 사료라는 벽 안쪽 마당에 거의 그대로 남았고, 삼양사는 화학으로 담장 하나를 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성장을 넘어서는 품목을 쥐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니까 표에서 보여준 실적 크기 차이는 능력의 차이라기보다, 벽 안의 아늑함을 얼마나 일찍 의심했느냐의 차이에 가깝다고 보인다. 아늑한 울타리는 그 안에 오래 머무는 자를 조금씩 작게 만든다. 다만 여기에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벽 밖에서 세계와 싸우는 그 회사조차, 벽 안의 오래된 테이블에는 다시 돌아와 앉았다. 셋이 마주 앉아 설탕값을 맞추던 그 자리다.

그럼 왜 설탕의 네 번째 기업은 없을까? 설탕은 만드는 데 큰 공장과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벽은 관세다. 원료인 원당을 수입하면 관세가 3%지만, 완성된 설탕을 수입하면 30%가 붙는다. 열 배다. 그러니 값싼 외국 설탕이 국내 시장을 흔들 방법이 마땅치 않다. 심지어 수입업자가 3% 관세를 노리고 원당을 들여와도, 세관에서 분석해 보면 대개 30%짜리 설탕으로 판정된다고 한다. 문은 있지만, 문턱이 사람 키만큼 높다. 그리고 이 높은 문턱은 세 회사에게 더없이 아늑한 울타리가 된다. 바깥에서 아무도 못 들어오니, 안에 있는 셋은 서로만 신경 쓰면 된다. 바로 거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품목HS코드기본관세
원당 (사탕수수·사탕무)1701.12~143%
백설탕·정제당1701.9930%
가향·착색 설탕1701.9130%
포도당·과당 등 기타 당류17028~20%
당밀 (몰라세스)17033%

※ 2026년 적용 관세율표 기본세율(관세청 품목번호별 관세율표). WTO 양허세율 기준으로는 정제당에 85.1%(또는 kg당 199.8원)까지 물릴 수 있게 잡아 두었다. 30%도 자제한 숫자인 셈이다. 반대로 물가가 급할 때는 할당관세로 원당을 한시적으로 0%까지 내려 준 적도 있다.

관세율표를 열어 보면 이 벽의 설계도가 그대로 보인다. 원료는 열어 두고, 원당 3%, 당밀 3%, 완제품은 막는다. 설탕 30%. 가공 한 단계를 사이에 두고 관세가 열 배로 뛰는 이 구조를 경제학은 경사관세라고 부르는데, 풀어 말하면 ‘재료는 사 와라, 부가가치는 국내에서 붙여라’라는 국가의 설계다. 그 부가가치를 붙일 자격이 셋에게만 있었을 뿐이다. 표의 맨 아랫줄, 설탕을 짜내고 남은 검은 시럽인 당밀도 3%로 들어온다. 이 시럽이 발효 탱크를 거치면 주정이 되고, 그 주정이 우리가 아는 초록 병 소주가 된다. 설탕의 벽과 소주의 벽이 같은 원료의 사슬 위에 서 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의 뒤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회사설탕 점유율담합 과징금 (최종 의결)
CJ제일제당약 49%1,383억원
삼양사약 32%1,302억원
대한제당약 19%1,273억원
3사 합계약 89%3,959억원

※ 2024년 기준. 자료는 각 사 공시.

4년 동안, 여덟 번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세 회사는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4년이 넘도록 설탕 값을 함께 정했다. 여덟 번에 걸쳐 값을 움직였는데, 올린 게 여섯 번이고 내린 게 두 번이었다. 한 매체는 이 사건을 두고 「올릴 땐 광속, 내릴 땐 거북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카르텔의 속성을 이보다 잘 요약하기도 어렵다.

방식은 놀랄 만큼 조직적이었다. 대표급과 본부장급이 만나 값을 어떻게 움직일지 큰 틀을 정하면, 영업임원과 영업팀장급이 다시 만나 거래처별로 언제 어떻게 통보할지를 맞췄다. 거래처와의 협상은 그 거래처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회사가 앞장서고, 결과는 셋이 나눠 가졌다. 세 회사의 경쟁이라기보다는, 한 회사가 세 개의 얼굴로 움직이는 것에 가까웠다. 공정위가 2년 넘게 뒤를 밟은 끝에 한 곳의 자백으로 겨우 깨진 벽이다.

2026년 2월, 공정위가 발표한 잠정 과징금은 모두 4,083억 원. 이후 3월 전원회의 의결에서 3,959억 원으로 줄었다. CJ제일제당 1,383억 6,200만 원, 삼양사 1,302억 5,100만 원, 대한제당 1,273억 7,800만 원이다. 발표 당시 담합 사건 과징금으로는 총액 기준 역대 두 번째, 회사당 평균으로는 역대 최대였다. 그리고 이 기록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 뒤 밀가루와 전분당의 담합이 차례로 그 위에 올라서는데, 그 이야기는 이 책의 뒤에서 하게 된다. 다만 마지막에 반전이 하나 있다. 엄단하겠다던 공정위는, 최종 의결에서 발표액보다 백억 원 넘게 깎아 주었다. 그런데도 대한제당과 삼양사는 그마저 받아들이지 않고 불복 소송을 냈고, 법원은 판결이 날 때까지 일단 집행을 멈춰 주었다. 셋 중 실제로 돈을 내기 시작한 곳은 CJ제일제당뿐이다. 카르텔을 벌하는 손조차 어딘가 조금 무르다.

이 사건은 뒷마당의 풍경도 바꿔 놓았다. 세 회사에게는 1955년부터 함께 써 온 응접실이 있었다. 대한제당협회. 3사가 회원의 거의 전부이던, 일흔 살의 사단법인이다. 공정위 발표가 나온 바로 그날 CJ제일제당은 ‘경쟁사와의 접촉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며 협회 탈퇴를 선언했고, 두 달 뒤 협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스스로 해산을 의결했다. 오해는 말자. 공정위가 잡아낸 담합의 자리는 협회 회의실이 아니라 호텔과 식당의 사적인 모임들이었다. 다만 일흔 해 동안 셋이 함께 드나들던 응접실이 담합이 들통나자마자 서둘러 문을 닫았다는 것. 이 관계의 성격을 이보다 잘 보여 주는 장면도 드물다.

벽이 높을수록, 안은 아늑하다

앞서 통신 세 회사를 이야기하며, 나는 그들이 “짜지 않으면서도 짠 것처럼” 움직인다고 썼다. 요금제가 서로 닮고, 아무도 먼저 값을 내리지 않는 그 조용한 균형 말이다. 설탕 세 회사는 거기서 딱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짠 것처럼이 아니라, 진짜로 짰다. 그리고 걸렸다. 통신과 설탕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과점이라는 구조 자체가 늘 그 한 걸음을 속삭이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새 경쟁자가 들어올 수 없을 때, 안에 있는 몇몇은 굳이 서로를 이길 이유가 없어진다. 이기려고 값을 내리면 다 같이 손해고, 눈치껏 값을 맞추면 다 같이 편하다. 관세라는 높은 문턱은 소비자를 지켜 주는 대신, 실은 세 회사의 담합을 지켜 준 셈이다. 그래서 나는 과점을 볼 때, 점유율보다 그 시장의 문턱을 먼저 본다. 문턱이 높을수록, 그 안쪽은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아늑하다.

4천억 원의 과징금은 결국 회사가 낸다. 하지만 4년 동안 조금씩 더 얹어진 설탕 값은, 커피 한 잔과 과자 한 봉지와 빵 한 조각을 통해 우리가 이미 나눠 냈다. 카르텔의 계산서는 언제나 가장 나중에, 가장 조용히 도착한다. 그리고 수신인은 늘 소비자다.

담합하던 회사들의 안쪽

4천억 원의 과징금을 나눠 문 세 회사의 울타리 안은, 이제는 평범하게 보일 정도로 적당히 안락하다.

회사직원수평균 연봉평균 근속1인당 매출1인당 영업이익
CJ제일제당8,232명8,411만원9.3년약 8.8억원약 2,300만원
삼양사1,257명8,620만원13.3년약 15.1억원약 5,200만원
대한제당320명7,243만원13.6년약 32.5억원약 1억 5,000만원

기준: FY2025(2025-12-31) 사업보고서 직원 현황, 1인당 매출·영업이익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연봉은 7천만~8천만 원대, 근속은 9~14년으로, 여느 중견 식품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깥에서 관세로 경쟁을 막고 안에서 조용히 값을 맞추던 그 견고한 구조가, 정작 직원들에게 특별히 더 후한 무엇으로 돌아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카르텔의 이득이 향하는 곳은, 대체로 직원의 통장이 아니다. 다만 표의 맨 아랫줄에는 묘한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셋 중 가장 작은, 고작 320명의 대한제당이 2025년 별도 영업이익을 114.5%나 불리며 한 사람당 1억 5천만 원의 이익을 남겼다. 설탕이 매출의 곁가지인 회사, 설탕에 화학을 얹은 회사, 그리고 설탕이 거의 전부인 회사. 그중에서 설탕이라는 오래된 벽은, 벽에 가장 바짝 붙어 사는 가장 작은 회사에게 가장 두터운 몫을 남긴 셈이다.

다음 이야기도 과점이다. 이번엔 우리가 하루의 끝에 기울이는 잔, 맥주다. 두 잔 중 한 잔은 어김없이 그 회사 것이라는, 카스라는 이름의 조용한 지배를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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